내가 오래전 가보았던 독산동 우시장 순댓국집입니다.
고독한 애주가를 자칭하는 허안나라는 개그우먼이 이 집에서 내장탕과 순대를 시켜놓고 쏘주까는 걸 보니
내 입맛도 허당은 아닌가 봅니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 오랜만에 가보니 9시에 문을 열며 칼로 자르듯 아직 안된답니다.
벌써 그 부근에서 혹시나 하며 30분 정도 시간을 죽이고 있던 터라 아쉽지만 다음을 약속합니다.
귀가 중 빨간 내장탕 대타로 '마라'가 생각나 대림역에서 내립니다. 그 유명한 대림역 12번 출구.
영화에서 여기를 배경으로 조선족을 얼마나 흉악하게 묘사해 놓았는지
한동안 거길 간다면 손사래 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물론 그때도 음지가 아니었지만 지금도 음지가 아닙니다.
먹는 재미에는 새로운 맛을 찾는 재미도 포함되는 것이지만 실패할까 망설여집니다.
시장통을 한 바퀴 돌고서야 그래도 조금 덜 생소한 음식 그림이 걸려있는 집으로 들어갑니다.
대표 메뉴인 모양인데 그중에서도 <마라 소고기 도삭면>이라는 것이 빨간 내장탕에서 이루지 못한 소원을
<함소원>하게 풀어줄 듯합니다.
요즘 중국음식점들 카페처럼 고급스럽고 깔끔한 곳 많습니다.
비 오는 날 맛있는 안주 시켜놓고 한잔하면 끝내줄 뷰포인트입니다.
'괴기'를 너 먹을 만큼 먹어봐라 하며 아무렇지 않게 집어넣어준 듯한 비주얼입니다.
이게 8천?
몇 년 전 명동에서 먹었던 도삭면은 해물이었는데
대패밥이 두터워 국물 양념이 배어들지 못해 별로 재밀 못 봤었습니다.
기름을 깨끗이 걷어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게 매운맛과 어우러집니다.
고기는 뻑뻑하지 않고 촉촉한 장조림 같은 식감이고 면은 양념이 배인 것처럼 부드럽습니다.
머릿속에 내장탕을 그리며 안주 삼아 천천히 음미하며 먹습니다.
이번 도삭면은 성공했습니다. 안주로 모자람 없이 고기 푸짐하고 국수가닥 하나하나가 모두 안주입니다.
맛이 괜찮아 향라 닭날개 하나 포장하고 시장에서 볶은 땅콩과 중국 소시지 하나 삽니다.
음식은 그 자리에서 먹어야지 포장은 역시 맛이 떨어지는군요
살라미처럼 보이는 것 말고 통통한 소시지를 하나 삽니다.
위 사진 속 작은 사진처럼 속살이 탱글탱글 고소합니다. 성공했습니다.
여름 장마처럼 비 뿌리는 어제 대림동 빨간 도삭면을 찾으려 했으나 너무 청승맞은 것 같아
문안에서 마라 소스를 넣은 소고기 쌀국수로 비를 안주삼아 한잔했지만 함량 미달입니다.
같은 소고긴데 왜 이리 격이 다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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