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하기 힘든 게 봄 날씨이긴 하지만 요 며칠은 10도 후반을 오르내립니다.
개나리야 지멋대로 피는 꽃이니 그러려니 하지만 때맞춰 피는 범생이 꽃들은
꽃샘추위가 마지막으로 몰아치면 몸살 나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몸이 으스스하다고 방구석에 죽치고 앉아 있어 봐야 눈총 받기 십상이니
밖으로 나왔는데 얼핏 생각나는 게 홍대역 바로 곁 지하상가에 있다는 <평양도 상원냉면>이었습니다.
카톡 채팅방에서 <닥다리로가는길>을 검색, 채널+하시면
지난주만 해도 물이 안 오를 것 같았던 나뭇가지에는 살포시 꽃을 피우고 있었습니다.
한겨울에도 반바지에 아이스커피 들고 다니던 청춘들은
날이 따스하고 화창하니 보란 듯 아예 반팔로 다닙니다.
매화야 남쪽에선 벌써 피었지만 경의선 숲길에도 산수유와 함께 만개했습니다.
서울로7017(서울역육교공원)은 봄바람이 세차게 들이치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햇볕이 잘 들어 모란, 명자나무, 앵두나무, 목련들은 꽃피울 준비를 하고 있고
진달래. 영춘화는 만개했습니다.
공덕 4거리에서 경의숲길을 벗어나 만리재 옆길로 들어섰습니다.
얼핏 봐서도 7개 구역씩이나 구역을 나누어 기초 토목공사가 한창이었습니다.
도심치고는 늦게 개발되는 곳인데 일식주택의 특징 중 하나인 2층 돌출형 창문도 보이고
오랜만에 들어보는 '왕대포'란 작은 간판이 달린 실비집도 있습니다.
대포는 준다라는의미라는데 내가 아는 왕대포는 막걸리를 담은 큰 사발을 뜻합니다.
밀주 익는 커다란 항아리에서 대폿잔으로 떠 입바람으로 술 위에 뜬 먼지를 귀퉁이로 밀어내고
벌컥벌컥 들이키던 김승호 배우의 연기가 볼만했었지요..
따뜻한 날씨로 붐비는 남대문시장, 반갑습니다.
지은 지 오래된 빌딩 같지도 않은데 지하철과 연결되는 냉면집을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홍대스런 외관과 달리 도봉순스런 지하 '음식백화점' 커다란 홀 귀퉁이에
상원냉면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는데,
조명은 침침하고 주방도 커튼으로 가리어져 문을 열지 않은 줄 알았습니다.
홍대 앞에서 평양냉면을 내세우고 있다니...
새콤, 달콤, 매운 걸 좋아하는 젊은 세대에 먹힐까?
차림새는 학생 같은 아주머니가 양지 두 점 올라간 냉면을 갖다 주었습니다.
육수를 따로 시켜 먹어보니 상당히 진한 맛으로 요즘 내 입맛에 맞습니다.
맵지는 않았으나 달달한 양념이 사리 맛을 덮어버려 아쉽습니다.
그러나 서울에서 삼삼한 육수에 양지 두 점씩이나 올라간 평양냉면을 9천 원에 먹을 수 있다면 고맙지요. ^^
판문점 평양냉면으로 평양냉면의 오리지널리티에 대한 환상은 이미 깨져버린 지 오랩니다.
한우로만 '육향 나는' 그 많은 육수를 낸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할 테고
거기에 닭국물이라든가 동치미 국물을 첨가해 만드는 게 현실일 겁니다.
그래도 내가 평양냉면을 찾는 것은 메밀로 만든 면 때문이었는데
그것조차 이제는 신뢰가 가질 않으니 냉면은 격식 따지지 말고 내 입맛에 맞게 먹는 게 정답인 것 같습니다.
누들플레이션의 원흉으로 냉면이 꼽히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고 삐딱하게 부정적으로 볼 게 아니라 기성품을 사다 만들어 잡수십시오.
간단합니다. 사태나 양지가 있으면 좋고 돼지고기라도 상관없습니다.
물을 적게 잡고 고기를 삶아 편육으로 만들고 남은 국물은 기름을 걸러 기성품 냉면 육수와 섞습니다.
큰 사발에 사리 예쁘게 담고 냉면 김치와 절인 오이와 수육, 그리고 계란을 올립니다.
요즘 기성제품 잘 나옵니다. 나는 풀무원 평양냉면과 팔도 비빔장(원하시는 분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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