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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농주에 곁들여 먹는 밥 아니 안주 - 동선동 신신식당

fotomani 2010. 7. 7. 12:40

어느 신문에 ‘홍어를 고수할 것인가 갈매기살과 춤출 것인가’라는 맛깔스러운 제목으로 서울에서 막걸리와 잘 맞는 안주를 소개한 글이 실렸다. 글 솜씨도 좋아서 그 글을 읽고 회가 동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소개한 곳 중 동선동 신신식당이 끌린 것은 퇴근하면서 쉽게 들려볼만한 위치에 있었고 직접 담근 농주를 판다는데 입안에 침이 고이고 발바닥이 간질거려 잠시라도 느긋이 기다릴 수가 없었다.

돈암동에 내려 들어간 명동인가 싶은 성신여대 골목

 

장소를 이전하여 꼬불꼬불 한참 걸려 찾았다.

성신여대 미디어관 앞에 있는데 신신식당이란 옥호가 이 보문천변 성북구청 뒤에서 역사가 만만치 않음을 알려준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퇴근길에 돈암동에 내렸다. 지도상으로 대충 지리를 익혔지만 장소를 이전했는지 찾는데 꽤나 시간이 걸린다. 허름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비교적 깨끗한 식당에는 젊은 남녀 2쌍과 가족단위 손님이 홀의 앉은뱅이 식탁을 차지하고 있다. 기사 제목으로 보아서는 당연히 홍어삼합이 있으리라 짐작했는데 메뉴판에는 홍어의 홍자도 없으니 무엇으로 안주를 해야할 지 당황스럽다. 그러나 홀 안에는 홍어 삭은 냄새 대신 주방으로무터 흘러나오는 구수한 냄새가 내 코를 간질어 그 정체가 무엇인지 은근히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누가 장소이전하며 상호로 쓰라고 써준 글씨인 듯한 선미당(鮮味堂)

음식의 색깔은 그쪽인듯한데 이미 많이 알려진 투박한 신신식당의 이미지를 포기하긴 쉽지 않은 듯하다.


“몇 분이 오셨어요?” 혼자라 하니 자동적으로 쌈밥 하나를 주방으로 주문한다. 간판에는 글자 크기 순서로 욕쟁이 할머니집, 우렁쌈밥전문, 신신식당이라 써놓고 홀 안에 붙여놓은 액자에는 재미난 글씨로 선미당(鮮味堂)이라 붙여놓아 어느 하나 버리지 못하고 식당의 색깔을 고민하는 주인의 복잡한 속내가 읽히는 것 같아 흥미롭다. 농주 만원, 기다리는 동안을 참지 못해 우선 농주 반을 시키고 호리병의 술을 따르니 의례 탁주일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무너지고 종지 잔에는 맑은 술이 채워져 농주보다는 선비주라 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다. 한 모금 마시니 달달하면서도 쌉싸름한 맛이 약주에 가까운데 백세주 정도의 도수가 될 것 같고 몇 모금 마시니 혀에 착 감겨 여운이 있다.

 

 

 

호박색의 농주. 의례 걸쭉한 탁주이겠거니 했다가 맑은 술이 나와 농주라는 이름이 무색해진다.

약간 달싸하고 쌉싸름한 맛으로 입안에 맛이 오래 남는 편이다.


쌈밥과 함께 막걸리를 먹어본 것이 수유리에 있는 송원보쌈집이었나? 밥을 안주로 먹자니  은근히 걱정된다. 이윽고 나오는 반찬류들, 잘 익은 총각김치, 두부조림, 호박전, 동치미, 된장에 무친 나물, 데친 양배추와 상치와 케일을 비롯한 쌈 한 무더기가 일단 나오고 뒤를 이어 깡장과 청국장이 나온다.

 

 

 

  

 

홀 안에 찬 구수한 냄새는 바로 깡장을 볶는 냄새였는데 지글지글 끓는 작은 뚝배기에 깡장을 넣고 다진 양파와 쪽파로 덮었다.  잘 섞어 맛을 보니 이 맛 참 야릇하다. 보통 깡장은 재래된장으로 만들어 약간 짜면서 짙은 색깔인데, 모양은 만두속처럼 으깬 두부나 비지에 된장과 우렁을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이면서 맛은 잘 숙성된 만두속이 연상되거나 혹은 젊은 사람이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치즈처럼 기름지고도 입안에 텁텁히 남는 그런 오묘한 맛을 내니 깡장이라기 보다는 쌈장이다. 쌈은 커다랗게 싸서 입이 터질듯이 먹어야 제 맛이 난다하여 예쁘게 보여야 하는 데이트 코스에서 제외되는 음식 아니던가? 그런데도 젊은 연인들이 이 자리에 앉아 있는 이유와 신신식당이라는 대포집 이름과 깔꿍떠는 선미당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비비기 전 깡장

 

일반적으로 깡장은 짜서 조금씩 덜어먹게 되는데

짜지도 않고 구수한 맛이 아이들에게나 젊은이에게 잘 맞는 맛이다.

여기선 이것을 우렁각시라 한다.


내가 좋아하는 청국장은 좀 걸쭉해야한다. 그런데 이 집 청국장은 묽어서 심하면 ‘에이, 좀 더 집어넣고 끓이지’라는 말이 나오겠다. 그러나 수저로 건져먹는 청국장의 콩맛은 냄새와 단맛이 다 빠져나가지 않은 그런대로 괜찮은 맛이다. 놋그릇에 담겨 나온 밥을 안주삼아 아껴가며 쌈도 싸서 먹고 반찬만 싸서도 먹어보는데도 호리병의 술은 의외로 많이 나와서 알딸딸해온다. 호리병을 흔들어 마지막 잔을 채우고 나니 그 많던 쌈이 1/3정도밖에 남지 않았다. 쩝!

 

  

안주로 먹게 되니 밥을 쬐끔씩 싸서도 먹어보고 반찬만 싸서 먹어보기도 하고

그러다보니 그 많던 쌈이 거의 다 없어졌다.

그 다음날 화장실에서야 웰빙음식임을 절실히 깨달았다.


더운 날씨에 땀을 빨빨 흘리고 찾아갔는데 기대했던 것이 없다면 허탈해지게 마련이고 글쓴이를 원망하게 된다. 그러나 꿩 대신 닭이라고 욕쟁이 할머니의 잘 삭힌 삼합도 없고 걸쭉한 막걸리는 없지만 잘 차려진 밥상의 구수한 깡장과 맑은 농주를 건졌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언제 쉬는 날 마누라하고 같이 한번 찾아보면 맛있었다는 말이나 들을라나?

 

929-2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