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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션하게 메밀국수 한판 먹을까?

fotomani 2010. 6. 22. 09:20

해장이라 하면 속을 푼다는 말이 되겠는데 알코올로 찌든 속에 아무리 기름지고 뜨거운 국물이 들어간다 한들 잠시 뿐이지 어디 쉽게 풀리겠는가? 그래도 쩔은 속은 본능적으로 뜨거운 국물을 원하는데 요즈음은 옛날처럼 고기가 많이 들어 간 해장국을 전처럼 많이 찾지 않는 듯하다.

 

동대문 종합상가 먹자골목 입구

동대문 종합상가 D동 앞 대로변에 있던 노점상들을 모두 이곳으로 몰아넣었다

디자인 서울이란 슬로건 아래 노점상들을 대로에서 보이지 않는 골목으로 모아놓고

특화거리를 만들었는데 이곳은 그래도 형편이 낫지만 충신동 모종상거리나

혜화경찰서쪽 노점상이 모인 거리는 개점휴업상태이다.


동대문 종합상가에 연이은 먹자골목은 정확히는 선진시장 골목인데 워낙 오래 된 건물들이 밀집해있고 복잡한 곳이라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기 힘든 곳이다. 1년여 전에  닭한마리집 근처에서 화재가 나서 그 부근에 새 건물이 들어서기는 했지만 가게마다 한 가닥 씩 한다는 유명한 집들이 몰려있어, 집짓는 동안 장사를 걷어치우고 새로운 건물을 지을 사람은 없을 것 같으니 맛이 있더라도 당분간은 재래시장 한구석에 박혀 먹어야 할 것 같다.

 

본격적인 먹자골목. 새벽녁이라 한산하지만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는 걷기 힘든 골목이다.

작다고 후지다고 우습게 보지 마시라!

이곳에 즐비한 작은 음식점들 모두 한가닥한다는 집들이다.


이 골목에는 연탄 생선구이집을 위시해서 닭 한 마리, 각종 백반류, 곱창집, 해물탕, 대구식 돼지불고기, 횟집, 매운탕집, 심지어 보신탕집까지 다닥다닥 붙어있는데 그날도 전날 먹은 술로 헛헛해진 배를 끌어안고 이 골목으로 들어섰다. 애가 선 것도 아닌데 그날따라 생선 굽는 냄새가 왜 그리 싫은지 연기를 피해 슬슬 걸어가는데 <동경우동>이라 쓰인 간판이 눈에 띈다.

 

왜 그전에는 눈에 띄지 않았을까?


안으로 들어서니 예상 밖으로 깨끗하고 음식준비를 하던 수더분한 아줌마가 인사를 한다. 차림표에 우동+카레 같은 콤비 메뉴가 많아 젊은 고객이 많은 듯하고 정종까지 포함되어 있어 분식집 수준은 넘겠다는 짐작이 든다. 전날 실수나 안했는지 기억의 실마리를 풀어보느라 멍청히 앉아있는 내 앞에 신문을 갖다 놓는다.

 

이 골목 음식점치고는 꽤 깨끗하다.

 

'+'를 이용한 콤비메뉴가 많은 것으로 보아 젊은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는 것 같다.

실제로 새벽에 평화시장쪽으로 가면 의류를 커다란 까만 비닐봉투에 포장테이프로 직직 붙여가지고

다니는 쭉쭉빵빵의 젊은 소상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맛이란 게 본래의 맛이든 아니든 간에 처음 길들여진 맛이 머리 속에 깊이 새겨지게 마련이다. 우동이나 가락국수라면 대전역에서 열차 대기 중에 먹던 가락국수 맛이 으뜸이 아니었나 싶다. 그도 그럴 것이 역이란 역마다 정차하고 뒤에서 달려오는 급행열차에게 선로를 내주느라 시도 때도 없이 대기하니 야간열차에서 할 일이라고는 땀냄새와 담배연기 속에서 오징어에 애꿎은 쏘주 까는 일밖에 더 있겠나? 그런 상태로 서울에서 대전까지 서너시간 걸려 내려오면 속에서 올라오는 것은 신트림 뿐이니 뜨거운 국물이 얼마나 반가울 지는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다.

 

처음에는 감미료를 거의 느낄 수 없어 담무지도 담근 짠지를 이용해 내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새벽에 배달을 받는 것인데 색소가 짙지 않고 뒤에 남는 감미료 맛이 적어 그런대로 먹어줄만 하다.

 

일반우동. 어묵 둘과 아직 아삭한 튀김조각


이윽고 나오는 우동, 국수에 커다란 어묵 2개, 유부와 튀김조각, 다진 파가 올라 있다. 고춧가루를 뿌려 먹으니 의외로 괜찮은 맛이다. 아직 튀김조각들은 불지 않아 아삭하고 멸치 맛도 가미된듯한 국물. 면발도 탄력이 있다. 이 정도라면 메밀국수 맛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간이 찡할 것 같은 얼린 장국과 갈은 무


근무처로부터 좀 걸어야 하기는 하지만 뙤약볕을 헤치고 직원들과 함께 같이 간다. 3명이 초밥+우동과 메밀국수 둘을 시킨다.  메밀국수를 시킬 때마다 하나를 시킬지 둘을 시킬지 망설여지는데, 요즘 냉면은 하나 먹으면 약간 모자란 듯하여 아무 생각도 없이 모 평양냉면 집에 가서 곱빼기를 시켰더니 아줌마가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날따라 손님도 없는지 흥미롭게 지켜보던 아줌마가 하나를 먹고 사리를 집어넣는 나에게 ‘육수 더 갖다 드려요?’라고 얄밉게 물어 본다, 어느 중국집에서는 손님이 커다란 그릇에 담긴 자장면을 맛있게 먹고 있어 의례 곱빼기겠거니 하고 시켰다가 세숫대야 같은 그릇에 담겨나온 자장면을 보고 그 손님을 원망한 적도 있다. 다행히 양에서 면과 메밀장국이 야박스럽지 않다. 미간이 찡해올 것 같은 빙수 같은 장국에 갈은 무와 다진 파가 미리 담겨 나온다. 면을 떠서 장국에 풀고 사이사이에 국물을 흠뻑 스며들어가게 해서 입안에 넣고 우물우물 씹으며 장국물을 들이킨다. 시원하고도 입안에 남는 손맛이 좋다. 비록 납품 받는 것이긴 하지만 이 집 단무지와 피클도 감미료 맛이 적어 호감이 간다.

 

장국과 면 모두 따로 더 주문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면을 장국에 훌훌 말고 면발 사이에 장국을 흠뻑 적신 다음 입안에 넣고

장국그릇을 입에 대고 국물을 마셔가며 먹는 맛이라니...

 

메밀국수는 면과 장국만 나오기 때문에 사실 ‘잘 한다’는 말 듣기 어려운 음식이다. 특히 장국의 역할이 거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데, 불과 몇 천원짜리 메밀국수 장국 만드는데 원재료를 가져다 쓰는 집이 있겠나? 가다랑어포(가쓰오부시)에 다시마, 멸치 등 어떤 부자재를 써서 얼만큼 정성껏 장국을 만들어 내느냐에 따라 맛의 편차가 생기는 거 아닌가 한다. 맛있다는 메밀국수집으로 종로 미진, 북창동 송옥, 인천 신포동이 유명하다고 하는데, 다양한 평이 나오는 것을 보면 메밀국수는 간단하면서도 꽤 까다로운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며칠 후 다시 가서 우동+카레를 시켜 먹어본다.

전날 카레 전문점에서 먹은 카레보다 크게 처지지 않는다.


동경우동은 을지로 3가에도 같은 이름으로 영업을 하는데 이 집 주인은 거기에서 17년간 일했고 을지로는 친정고모가 하는 것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