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새는 스피커 자작에 정신이 팔려 부품구경도 할 겸 점심시간에 가끔 시계골목쪽으로 해서
세운상가를 거쳐 피맛골에 가서 점심을 먹곤합니다.
가끔 이렇게 필름카메라를 진열해놓은 곳도 있지요.
이젠 이곳도 장사가 예전같질 않아 문을 닫은 점포도 눈에 많이 띕니다.
곪아만 가는 서민 경제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마이 아픕니다.
시계골목 끝쯤 가면 스피커, 앰프를 파는 골목과 아세아상가가 나옵니다.
오밀조밀하게 뭐가 많지요.
하이파이 전문점에서 파는 부품에야 따라갈 수 없지만 그래도 이젠 품질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부부가 하는 집인데 신통하게도 늙수구레한 여주인은 뭐가 뭐인지 나보다도 더 많이 압니다.
눈요기를 하고 서울극장 옆골목으로 들어가면 유명한 굴보쌈집이 나옵니다.
하나 시키면 보쌈과 감자탕까지 푸짐하게 주는 집이지요.
파전까지 줬던가? 오래 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거길 지나면 참진한 설렁탕이라는 설렁탕집이 나옵니다.
며칠 전 제가 잘가는 이 근방의 설렁탕집을 갔다가 제 입맛이 변한건지
국물 맛이 예전 같질 않아 찝찝하게 나오던 중 발견한 집입니다.
이 동네 음식점치고는 꽤 깨끗합니다.
벽에는 '우리 집에서는 프림이니 우유를 첨가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적혀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걸 강조할수록 더 믿음이 가질 않으니 또 잘못 들어온 것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들고
특유의 탕국물 냄새도 나질 않으니 그저 그런대로 배나 채우리라 마음을 먹습니다.
'보통'을 시켜 실망하느니 '특'을 시켜 고기라도 더 먹자는 속셈으로 특을 주문하는데 벽에 걸린 메뉴판이 희한합니다.
설렁탕 특에 괄호치고 웬 양지, 우설, 도가니를 써놓았단 말입니까?
느닷없이 멸치볶음은 멈미?
이제는 예전의 설렁탕 맛을 찾아보기 힘들고 그것도 머리 속에 가물가물하니,
월남한 이북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냉면 맛이 정작 이북에 가니 '내가 생각했던 맛이 아니더라'는 것처럼
제대로 된 설렁탕 찾기는 애시당초 그른 모양입니다.
호~ 이집 깍두기, 맛이 있습니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담겨 나오는 특설렁탕.
거품이 가라앉길 기다려 탕을 헤집어보니 양지, 도가니, 우설이 진짜로 나옵니다.
어차피 소머리국밥 정도로 치부하고 먹을 요량이었으니 마음이 편합니다.
설렁탕 국물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아무렇게 만든 국물은 아니고 진합니다.
대파도 듬뿍 넣고 깍두기 국물도 넣고 배추김치도 넣어먹어보고
도가니인가요?
설렁탕도 아닌 것이 설렁탕인 체하는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거 며칠 지나서도 다시 한번 더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은근히 나게 만드니, 거 참 묘합니다.
"야! 얼굴 잊어 버리겠다."
일요일에 친구가 놀잡니다. 잘 됐습니다.
친구는 대짜고짜 꼬리찜전골을 시킵니다.
도가니나 우족은 쉽게 먹을 수 있지만 꼬리는 쉽게 먹을 수 없다나요?
하여간 좋습니다.
오랫만에 낮술 한잔 하는 것만해도 감지덕지인데 안주 가릴 거 머 있습니까?
펄펄 끓기 시작합니다.
싼 가격치고는 맛이 괜찮습니다.
가격이 싸면 고기에서 묵은내가 나기 십상인데 그런 냄새도 안나고 보드랍습니다.
아쉬운데 ... "아줌마, 여기에 도가니 고기를 넣어도 돼요?"
아줌마는 도가니 달라면 도가니 주고, 꼬리 달라면 꼬리 주고, 수육 달라면 수육도 넣어준답니다.
오가잡탕, 개밥. 내 식성에 딱 맞습니다.
"야, 그만 먹고 면이나 넣어서 먹자."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면과 함께 잘 익은 깍두기 같이 먹어줘야 궁합이 맞겠지요?
아~~ 아깝다. 엑기스, 진국을 또 남기네~~
070-8952-7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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