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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나들이 02 - 찬은 없어도 마음은 푸근하구려

fotomani 2012. 11. 30. 10:06

지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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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고도 짧은 밤을 보내고 아침에 나가보니 배추에 서리가 앉았습니다. )

 

그렇게 찬바람이 솔솔 스며들면 돌아눕고 천둥소리가 나면 다시 돌아눕고 하며 길고도 짧은 밤을 지냈습니다.

으스스한 새벽 공기에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꼬리치는데 따라 몸뚱이가 흔들리는 천방지축(개이름)이를 데리고

산 쪽에 있는 닭장과 밭으로 갑니다.

 

( 으스스한 새벽에 군불 지피는 것처럼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없지요. )

 

어제 두 포대씩이나 뿌려줬던 푸성귀는 흔적만 남고 무와 배추닢에는 서리가 하얗게 앉았습니다.

밭둔덕에 놓여있던 마른 잡초를 한 덩어리 들고 내려와 소각 드럼통에 넣고 군불을 땝니다.

불꽃은 하얀 연기를 낮게 드리우며 퍼져 나갑니다.

새벽녘 구수한 연기 냄새와 따뜻한 온기는 사람의 마음을 어찌나 푸근하게 만드는지.

 

( 부지런한 친구는 새벽 같이 일어나서 밥과 찌개로 아침밥을 손수 마련해서 친구들을 대접합니다.

집에서는 손도 안댄다는데 글쎄~~ )

 

친구는 원래 고향이 이곳 서천입니다.

농촌에서 자라 뭘 그리 아는 게 많은지? 농사일부터 자잘한 시골 밥상차림까지 모르는 게 없습니다.

원래 부지런해서 아침잠이 없지만 이곳에 내려오면 온갖 살림살이를 혼자서 다 챙깁니다.

오늘도 그렇습니다.

 어제 낮에 오늘 아침밥에 넣을 콩을 4가지 종류나 미리 불려서 밥을 해놓고 스팸만 빼면 웰빙인 찌개까지 끓여 놓았습니다.

 

( 고춧닢입니다. )

 

( 어제 만든 보쌈김치입니다, 코다리는 하룻밤에 살이 물러져 재고해봐야겠습니다. )

 

( 감오징어, 웬 스팸?, 표고 등등 좋다는 거 모두 들어간 찌개. ) 

 

어제 만들었던 보쌈속과 각종 김치, 갑오징어가 들어간 김치 두부찌개가 밥상을 꽉 채웁니다.

너 얼마나 처먹는지 한번 보자는 얼굴로 살살 약을 올리기 시작합니다.

막걸리 하나 있는데 해장 한잔 해야지?” 진퇴양난이긴 하지만 물러설 수 없습니다. “그래? 줘봐.”

곁에서 술 한잔 안 드는 친구부부가 한심한 듯 쳐다봅니다.

입가심으로 누룽지와 친구부인이 만들어 온 한과를 먹고 서울 올라갈 준비를 합니다.

 

( "막걸리도 한잔 드시지?" 사알살 약을 올립니다. "그래?, 먹어보자." )

 

( 친구 부인이 만들어 온 한과로 마무리합니다. )

 

트렁크에는 보쌈김치, 김장김치 몇 포기, 깨끗이 씻은 무, 어제 삶아서 냉동시킨 우거지, , 모과 등등 바리바리,

마치 친정집 왔다가는 딸내미 같습니다.

 

( 마곡사 초입에 까치밥으로 남겨놓은 감 )

 

그냥 올라 갈래니 좀 맹숭맹숭 합니다.

상경길에서 살짝 비껴나가 오래 전에 떼어놓은 얼짱 목어는 잘 있는지 마곡사를 둘러보기로 맘먹습니다.

단풍철이 좀 지나긴 했으나 사람들도 꽤 있고 까치밥으로 남겨둔 감과

계류에 비치는 태화산 자락이 가을을 느끼기 충분합니다.

 

( 마곡사 계류에 비친 가을산. 저걸 보고 어찌 마음이 절로 맑아지지 않을 수 있을까요? )

 

김봉렬은 마곡사를 끊김과 이어짐의 절묘한 조화라고 정의하였습니다.

 끊김이란 절의 한가운데를 남원과 북원으로 가르고 있는 개울(태화천)을 말함이고

이어짐이란 영산전을 중심으로 한 남원 쪽으로 북원에 속하는 건축물인 해탈문과 천왕문이 들어와 있는 것을 이름입니다.

그러나 이런 복잡하고도 고차원적인 해설이 아니더라도 일주문으로부터 개울을 따라 들어가는 길을 걷다보면

맑은 물에 우리의 마음도 저절로 무념무상의 순백이 되어 감을 느낍니다.

 아니 나중에 그랬다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지요.

 

 

( 마곡사 가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꽃담입니다. )

 

진입로가 끝나고 남원으로 들어서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산전 꽃담이 나타납니다.

뜰에 심어진 커다란 단풍나무는 마지막으로 제 몸을 불살라버리듯

분신을 수북히 떨궈 놓아 탐방객에게 가을을 만끽하도록 아낌없이 보시해주고 있습니다.

 

( 마곡사의 대표풍경입니다. )

 

극락교를 넘어 북원으로 들어가면 오층석탑, 대광보전, 대웅보전이 차례로 나옵니다.

맨 뒤에 있는 겉으로는 2층으로 보이는 대웅보전 앞마당에서 비 오는 날

나뭇닢 떨어진 대광보전 기와지붕과 산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장관이었는데

어느새 그 앞에 심어놓은 주목나무들이 커져 시야를 약간 가리는군요.

 

( 뒤의 대웅보전은 겉으로는 2층이지만 안에서는 뚫려서 한개의 층으로 되어 있습니다.

저는 보슬비 내리는 날 저 앞마당에서 대광보전 기와지붕과 앞산 감상하는 걸 좋아합니다. )

 

 

 

 

벌써 10년이 넘었던가요?

십자각을 새로 지으며 내려놓았던 잘생긴 목어가 요사채에 걸려 있었는데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습니다.

무슨 말 못할 사연이 그리 많아 고향친구가 소리도 없이 이사를 간 것일까요?

 

( 10년도 훨씬 전에 찍은 정년퇴직한 목어. 참 순하디 순하게 생겼습니다. )

 

( 대웅보전 두개의 지붕선 )

 

 

 

( 지금은 문화해설사까지 있습니다. )

 

 

 

( 김장은 이렇게 여럿이 모여 시끌벅적이며 하는게 제 멋이지요. )

 

요사채 쪽으로 가니 김장을 하느라 절인 배추들이 쌓여있고 처사님들과 보살님들이 열심히 절인 배추를 손질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통에 담아놓은 양념은 얼핏 보더라도 여염집과 달리 무채를 고춧가루로 버무려놓은 게 고작입니다.

김장이라는 게 이렇게 법석여야 보는 사람도 즐겁지요. 제가 그리던 김장하는 모습을 여기서 보니 반갑습니다.

 

 

( 양념은 고추가루로 버무린 무채로 단순합니다. )

 

 

한쪽에는 커다란 보온물통과 군고구마 수레를 갖다놓았습니다.

일도 거들지 않는 주제에 날씨가 쌀쌀하니 군고구마 냄새가 더욱 구수하네요.

원래 일하는 사람은 묵묵히 일만하고 날라리는 주둥이만 까고 다니는 법입니다.

절이라는 이름의 뿌리로 어떤 분들은 배추를 절이면 숨이 죽듯이

은 절을 찾는 사람들의 상()을 절이기 때문에 절이라고 한다라는 말이 있는데

절인 배추를 보니 그 생각이 납니다.

 

 

 

경부고속도로에서 막힐 생각을 하니 오래 머물고 싶어도 오래 머물기 힘듭니다.

춘마곡추갑사라는 말이 있는데 내년에는 봄에 마곡사를 한번 들러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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