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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다리의 바닷길걷기6-아듀 강원 안녕 경북!

fotomani 2014. 1. 6. 09:31

 

닥다리의 바닷길 걷기, 벌써 6번째입니다.

사람으로 치면 고성에서부터 임원까지 한반도 흉추를 훑어내려 와서 이제 요추인 경상북도 죽변 쪽으로 갑니다.

장난삼아 해변길을 걷겠다고 자의 반 타의 반 10월초 떠밀려 시작한 것이

한 달에 두 번씩 걸어 이렇게 내려온 게 내가 봐도 신기할 정도입니다.

혼자 떠나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걱정과 두려움을 아직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처음에 비하면 준비가 홀가분한 편입니다.

 

 

 

미리 일기예보를 보고 비가 올 것이라고 짐작은 했었지만

많든 적든 겨울비 내리는 해안을 걷는다는 건 그리 즐거운 일은 못됩니다.

지난번 거꾸로 삼척으로 올라가느라 왔던 임원 버스정류소는 그것도 구면이라고 눈에 익어 반갑습니다.

비와 진눈깨비를 번갈아 가며 뿌려 대서 판초를 입고 임원항으로 들어서니

선구를 손질하느라 바쁜 한 아주머니가 나를 보더니 “@#$% 훨씬 좋네”합니다.

뭔 소린가 되물어보니 제 ‘갑바(덮개.판초)’가 자기 것보다 좋다는 말입니다.

 

 

 

 

임원을 벗어나자마자 하늘 높이 달리는 동해대로 고가도로는 앞에 고개가 있음을 예고해줍니다.

 ‘애고 오늘은 또 몇 개나 넘어야 할고~’. 고개에 올라서자 또 고갯길이 보입니다.

안경엔 뽀얗게 김이 서려 와이퍼 달린 안경은 안 나오나 엉뚱한 생각이나 하게 만들고,

그렇게 7km 정도를 가니 수룡 삼거리 작은 마을이 나옵니다.

길가 한식뷔페라 써놓은 작은 식당이 있어 버스 안에서 집에서 말아온 주먹밥을 들긴 했지만

지난번 초반에 쉬지 않고 걷는 바람에 진이 빠진 경험이 있어

보행시간이 줄어드는 초조감이 있긴 해도 식당으로 들어갑니다.

 

 

 

 

 

 

 

제육복음을 비롯한 댓가지 찬이 큰 그릇에 담겨있습니다.

잡채인 줄 알았더니 미역줄거리로 만든 미역잡채가 입맛에 맞습니다.

계산을 하려고 카운터로 가니 겹쳐놓은 외상장부들이 일렬횡대로 늘어서있습니다.

왠일이냐 물어보니 원전 공사 때문이랍니다.

고흥에 우주선 발사 때문에 한동안 녹동항에 돈이 넘쳤다더니 꼭 그 느낌입니다.

 

 

 

식당을 벗어나자 바로 도로 옆에는 발전소 직원 숙소로 쓸 아파트단지 공사가 거의 마무리 단계입니다.

곧 바로 호산리로 불리는 원덕읍입니다.

초입부터 유흥업소 간판이 보이니 아마 공사장 떡고물이 여기도 떨어지는 모양입니다.

원덕읍을 지나 고갯마루에 올라서니 퀭하니 자동차 전용도로만 보입니다.

사고차량을 견인하기에 바쁜 기사에게 국도가 어디냐 물으니 그게 국도라며 거기로 걸어가랍니다.

‘이 눈길에 자동차 전용도로로?’

긴가 민가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보행자는 우회하라는 작은 표지판이 눈에 띕니다.

옛 국도는 차량통행이 적은 편이지만 서행신호를 보내도 팥빙수를 튀기며 가는 데는 전용도로나 다름없습니다.

차가 오면 바지가 젖을까 길섶으로 물러나고... ‘이거 죽변까지 언제나 가누?’

 

 

 

 

 

 

뚝방길을 따라 월천해수욕장 해안 길로 들어서니 건너편에는 돔처럼 생긴 원자로공사가 한창입니다.

그 앞 작은 섬의 송림이 비명을 지르는 것 같습니다.

현대생활에 필요한 전기이긴 하지만 원전에 관한 한 내 머리론 해법이 별로 보이지 않습니다.

파도가 거친데도 월천해수욕장과 고포해수욕장을 잇는 해안 방파제나 테트라포드 위에서 낚시에 여념 없는 꾼들,

못 말립니다.

 

 

 

 

 

 

고포항에서 국도까지는 가파른 고갯길입니다. 눈요기 실컷했으니 이제 고생 좀 해보라는 것 같습니다.

아마 이 고갯마루가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일 것 같은데 아무런 팻말도 보이질 않습니다.

고갯마루 폐업한 휴게소 광장에서 끌며 당기며 엉기던 ATV 두 대가 아래 주유소에서 정비를 하고 있습니다.

축거가 짧아 아무리 사륜구동이라도 눈길엔 위험할 텐데

나의 염려도 아랑 곳 없이 ATV 중년부부는 쏜살같이 국도로 내빼버립니다.

 

 

 

 

 

 

북면사무소가 있는 부구리, 덕구온천과 갈림길이 있는 곳입니다.

날씨는 벌써 어두워지려하고 눈은 계속 내리고, 죽변까지 8km정도 남았는데 어찌한다? 일단 가보기로 합니다.

한울 원자력발전소 건설본부입구,

조금씩 쌓인 눈은 거의 발목까지 차오르고 4시가 조금 넘었을 뿐인데도 어둠은 깔리기 시작하고,

되돌아가 부구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일단 울진으로 들어가기로 합니다.

 

 

 

 

 

 

 

버스 정류소 코앞에서 버스를 놓치고 40분 정도 기다려 버스를 탑니다.

 기사나 손님이나 서로 구면인 듯 올라서는 사람마다 참견을 합니다.

울진 거의 다 들어가 학생이 타며 어디 가냐 물으니 눈이 쌓여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미끄러우면 울진으로 다시 되돌아 나온다고 다짐을 받습니다.

역시 눈많은 해안가 강원도 아니 경북을 실감합니다.

“여기 버스터미널이에요?”, 버스에 탄 승객 모두가 뒤를 돌아보며 아니랍니다.

기사 양반 한마디 더합니다. “방송을 잘 들으세요.”

 

 

 

울진 버스터미널로 들어가다 차들이 많이 주차해있는 24시 찜질방을 봤는데 내가 인터넷에서 봤던 곳이 아닙니다.

검색했던 찜질방 근처로 가 상점 주인에게 어느 곳이 깨끗하냐 물어보니 답이 엉뚱합니다.

“이런 말해서 될지 모르겠지만 XX가 좀 있는 사람들이 가네요”. “--”

 

찜질방에 들어가기 전에 요기를 하려하니 또 “2인분은 드셔야 돼요”입니다.

울진에서만 보는 구이집도 아니고 서울서도 흔히 보는 체인점에서 그럴 필요가 없지요.

내키진 않지만 눈에 띄는 게 없으니 감자탕집으로 들어갑니다.

“해장국이지요?”. 안경에 김이 서려 암것도 안 보이는데 왜 이리 재촉이냐 생각하며

“안경부터 좀 닦고 주문합시다.”했더니 혼자서 드실 게 그것밖에 없답니다.

 

 

 

그런데 이 뼈해장국 그게 아닙니다.

서울서는 뼈 따로 우거지 따로 양념 따로 노는데

우거지에도 후추가 아닌 구수한 양념 맛이 진득하니 배고 뼈도 잡내가 나질 않습니다.

“빨간 거 하나”, 대령한 것은 ‘맛있는 참’ 빨간 도장 쾅입니다. ‘이거야 참~’,

빨간 국물에 밥도 말아 그릇을 싹 비우고 나옵니다.

 

터미널 근방에 있는 사우나, 시설이 오래 되긴 했지만 샤워 물줄기 한번 기차게 쎕니다.

냉온탕 번갈아 가며 담금질을 하고 찜질방으로 가니 수면실은 비록 좁지만 따뜻합니다.

사람들과 좀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귤 반 조각 먹으며 TV를 보는 둥 마는 둥, 반수면 상태로 있으려니 내 곁에도 사람들이 자리를 잡습니다.

시끄럽다 생각한 TV도 어느 결에 꺼지고 곁에 자는 사람 코고는 소리가 거슬릴 즈음 잠시 눈이 떠집니다.

시계는 2시 반, 내 주위엔 반경 5m내에 사람이 없습니다. 내 ‘코르렁’ 방송 출력이 너무 강했나?

 

 

 

5시에 일어나 욕탕으로 가니 욕조물을 새로 받고 있습니다. 이거 괜찮습니다.

서울선 전날 쓴 물에 욕조가 흘러넘치게 하며 물갈이하는 데가 많은데요. 말하자면 욕조 청소를 안 한다는 얘기지요.

엊저녁에 그 차가운 냉탕에서 추운 줄 모르고 장난치던 까불이 꼬마 녀석이 “안녕 하쎄요”하며 인사합니다.

아빠랑 놀러왔냐 물으니 어제 부산으로 가는 버스를 놓쳤답니다.

그제서야 울진 읍내 찜질방에 겨울인데도 사람이 들어찬 이유를 알겠습니다.

눈이 와서 차가 안 다닌대지, 지방이라 일찍 시외버스 끊기지...

 

 

어제 생각해서는 걸을 마음이 없었는데 밖으로 나오니 기온도 괜찮고 눈도 살짝 얼어 그리 미끄럽지 않습니다.

어제 보행거리가 너무 저조해서 거꾸로 죽변까지 올라가기로 합니다.

4회 차에 친구로부터 선물 받은 LED 플래시와 후배로부터 공출한 깜박이 안전등이 큰 힘을 발휘합니다.

그래도 눈 위로 걷자니 속도가 나질 않고 덜 미끄러운 아스팔트로 걷자니 위험합니다.

 

 

 

어둠이 채 걷히지도 않았는데

죽변까지 절반 정도 거리의 온양리 근방 버스 정류소에는 울진으로 나가는 아줌마들이 몰려 있습니다.

아마 울진에 장이 서는 날인가 봅니다.

배낭에는 빨간 깜박이를 켜고 플래시를 들고 가는 나를 보고 자기들끼리 뭐라 그럽니다. 뭐 얘기야 빤하지요.

새벽같이 미친, 할 일이 없어, 왜 저러나, 생긴 건 괜찮아 보이는데, 등등.

다리는 아프지만 내색을 않고 보란 듯이 씩씩하게 말풍선들을 헤치고 지나갑니다.

 

 

 

진국 설렁탕집, 사람들이 찾는 내장탕집이 나를 홀리더니 함바집이 또 나옵니다.

계란프라이가 나오는 백반, 도라지무침, 시금치, 깔끔한 반찬들,

미역국은 건건이가 별로 없는데도 미역이 선도가 좋은지 입에 착 달라 붙습니다.

김으로 싸서 깨끗이 비우고 나니 누룽지도 갖다 줍니다.

그것마저 깨끗이 비우니 아침치고는 너무 거하게 먹었습니다.

평소에 제가 설거지 신경 쓰지 않게 하려고 반찬그릇을 싹싹 비우는 버릇이 있어서요.

 

 

 

 

 

죽변 버스터미널을 지나쳐 한참 들어 왔습니다.

다시 되돌아 물어물어 찾아간 곳은 ‘터미널’이 아니라 죽변 시외버스 ‘정류장’이라고 지붕 위에 자진신고하고 있습니다.

정류장 유리벽에는 ‘본 영화는 지역주민을 위해 한울본부에서 무료로 상영합니다.’란 문구가 적힌 친구2 포스터가

원전과 지역민과의 관계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삼척 쪽에는 눈이 거의 10cm가 되게 쌓였습니다.

버스로 강릉까지 가는데도 한참, 그동안 이 먼 거리를 걸어 내려왔나 생각하니 내 스스로도 대견합니다.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겨울나그네 보리수가 차창 밖의 설경과 어우러져 감미롭습니다.

 다음 차엔 ‘바리톤 거 누구더라?’ 가 부르는 겨울 나그네 전곡을 담아 그걸 들으며 걸어봐야겠습니다.

컬컬한 음색과 겨울 바닷바람이 어울릴 듯해서요. mp3 zip파일로 나에게 보내줄 그 누구 없소?

 

 

사족.

눈비에는 판초가 통풍이 잘되어 습기가 덜 차 좋긴 한데

 자동차가 지나며 튀기는 빗물이나 눈죽탕으로 바지가 젖거나 등산화 속으로 물이 들어갑니다.

무릎까지 올라오는 스패츠가 필요할 듯합니다.

군 경계에서는 가까운 군이나 읍 경계 내로 넘어가야 ‘시내’버스를 탈 수 있습니다.

경계제한이 없는 시외버스보다 배차간격이 짧고 운임도 쌉니다.

 

31km

누적 197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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