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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다리의 바닷길걷기 7 - 울진/평해

fotomani 2014. 1. 20. 08:35

 

지난번 눈내리는 바닷길을 걸었더니 주위에서 좀 쉬었다 날 따스해지면 걸어라 뭐라

거의 강압에 가까운 충고가 들어옵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질리는 때가 있는 법이고

죽네 사네 연애질에 막상 결혼을 하고나면 지나가는 개 쳐다보듯 무관심해질 수도 있는 게 우리네 인생입니다.

 그러니 남 보기에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걷는다는 일이 아무리 낭만적으로 보여도

실제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계속 걷는 일 뿐이니 분명 싫증날 때가 올 겁니다.

그러나 추위를 핑계로 겁부터 먹고 쉰다면 동력이 죽어 아예 동면을 해버릴지도 모르지요.

그래서 일단 계속 걸어보겠습니다.

 

 

울진에서는 지난번에 자보아서 찜질방은 문제가 없는데

경북 쪽이 워낙 버스탑승 시간이 길어 11시쯤 내리고 점심 먹고 하다보면 해가 짧아

실제 걷는 시간은 불과 4-5시간밖에 되질 않습니다.

그동안 쉬는 날이면 배낭을 둘러메고 나와 집사람 보기 민망하긴 하지만

이번엔 금요일 오후 출발하여 울진에서 자고 아침에 평해나 후포를 목적지로 삼아 출발하기로 하였습니다.

 

 

동서울에 도착하니 6시 반, 아직 시간이 충분히 남았습니다.

터미널 근방에는 의외로 내가 먹을 만한 것이 별로 없습니다.

쟁반짜장으로 저녁을 하고 지난번 걸으며 덕을 봤던 밤만주 2개를 삽니다.

동서울에서 울진행 막차를 타고 10분간 쉰다는 소리에 아이구 좋아라 눈을 떠보니 평창휴게소.

찬바람이 옷깃 사이로 마구 스며듭니다.

동해시를 지나 임원, 호산, 부구, 죽변, 지난 번 내가 거쳐 온 마을들을

좁은 국도로 경주용 자동차처럼 조리질을 하며 차례로 들르더니 울진에 도착합니다.

 ‘내가 이렇게 먼 거리를 걸어 내려왔었나?’

 

 

지난번 들렸던 동명사우나, 욕조에 물을 빼서 지금은 샤워만 할 수 있답니다.

새벽에 일어날 때 한기를 느껴 내의를 입고 걸을지 잠시 망설이다 그냥 입고 걷기로 합니다.

사람이 없는 읍내길은 수은등만이 차갑게 허물어진 담벼락을 비추고 있습니다.

울진 외곽 왕피천교, 달은 퀭하니 청승맞게 빈 하늘을 지키고 가로등 밑을 지나는 영감님을 보며

잠시 유랑자와 부랑자의 차이가 뭔지 생각해봅니다.

 

 

 

 

산포리 해변 근방으로 가니 바닷물이 파도치는 소리가 장난이 아닙니다.

길가 콘크리트 파도 차단용 난간에 손을 대니 진동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발자국 소리에 온 동네 개들이 짖어대고 이윽고 동녘이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합니다.

 비록 얇은 내의지만 탁월한 선택을 하였습니다.

지난번엔 동네에 함바집도 많더니만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 흔한 편의점 하나 보이지 않습니다.

배낭에서 밤만주를 하나 꺼내 먹습니다. 차기는 하지만 단맛에 허기가 잠시 물러납니다.

오, 귀여운 것.

 

 

 

 

 

비록 겨울이라 할지라도 파도이랑의 파란 바닷물색은 아름다움이 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름보다 더 깨끗하고 순수해진 느낌이지요. 이윽고 해가 떠오르기 시작합니다.

 엊저녁 모임도 불참하고 길을 떠났으니 떠오르는 해에 희망을 실어서 보내주어야겠습니다.

스마트폰에 사진을 담아 보냅니다. 계속 걸어도 사람 만나기 쉽지 않습니다.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아스팔트 위로 날라 와 인사를 합니다.

 

 

 

오산항, 동해의 항구는 새벽에 고기잡이 배들이 들어오며 부산할 만한데 어째 한적합니다.

그러고 보니 바다에서 어선을 거의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물 손질하는 아낙네들, 멍게양식을 위한 발을 만들고 있는 청년들, 말을 걸어보니 동남아인들입니다.

7번 국도와 만나는 덕신 삼거리로 나오니 식당이 보입니다. 걷다보면 ‘아침식사 됩니다.’라는 팻말이 왜 그리 반가운지요.

일단 혼자 들어가도 ‘눈총 받지 않겠다, 안주거리가 아닌 가정집 밥을 먹을 수 있겠다’는 안도감이지요.

 

 

 

고등어구이를 하나 시킵니다. 막간을 이용해 핸드폰을 벽에 붙은 콘센트에 끼우고 카메라 배터리 충전시킵니다.

작은 식당이긴 하지만 화장실에 비데까지 있더니 이집 반찬들 되게 ‘깔끔’떱니다.

연근 세 점, 완자 두 점, 멸치무침 한줌, 총각김치 몇 조각...

다행히 간고등어 따끈하고 오징어와 홍합이 들어간 우거지 된장국, 이런 건 처음보네...

다음엔 먹음직스럽게 담아내오라고 그릇마다 깨끗이 비웁니다. 계산하며 말을 시켜보니 그리 깍쟁이도 아니구 만서도.

 

 

 

 

이제 배도 든든하고 어제 밤 내려와 새벽부터 지금까지 15km 걸었으니 덤을 얻은 기분입니다.

고개를 올라 망양휴게소. 동해시 옥계휴게소 전망을 따라갈 순 없지만 그래도 봐줄만합니다.

기성망양해변. 물, 참 깨끗합니다. 겨울인데도 멀리서부터 층층이 변하는 바다 물빛이 마치 남해바다를 연상시킵니다.

변신로봇처럼 집게를 들어 올리고 서있는 대게상,

손목이 물린 것처럼 연출을 하며 찍어보지만 어색하기는 나이를 속일 수 없습니다.

 

 

 

 

 

 

 

 

간간이 오징어 말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해안도로 난간은 전부 오징어 말리는 틀로 쓰게 만들어 놓아 오징어철이 되면 장관일 것 같습니다.

잠시 산속도로를 지나 기성면으로 향합니다. 고갯마루에는 야생동물 통로를 만들어 놓아 멀리서보면 성문 같습니다.

이름 모를 묘에는 예쁘게 생긴 석장승을 만들어 놓고 마을 굴뚝에서 나는 연기가 사람냄새를 느끼게 해줍니다.

 

 

 

 

 

 

 

 

 

 

 

 

울진 비행훈련원 활주로는 분지에 만들어 놓은 모양입니다.

구경을 해보려 했더니 도로는 정문까지 올라오자마자 내리막으로 변하며 해변으로 내려가, 안을 들여다 볼 수가 없습니다.

구산항은 상당히 큰 어항인데도 여기도 마찬가지로 한적합니다.

이게 동해안 어항의 겨울 모습인 모양이지요?

 한쪽에선 도리깨로 콩을 털듯이 그물에 붙은 이물을 털어내고 한쪽에선 그물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어디셔?’ 금요일 부산에 볼일이 있다며 내려간 친구로부터 문자가 날라 옵니다.

기왕 내려왔는데 서울 올라갈 때 태워다 주겠다는 거지요.

내 일정 방해받는 게 싫어 그냥 올라가라는데 친구는 내가 사양하는지 아는 모양입니다.

타지에서 ‘쓸쓸히’ 찜질방에서 ‘궁상맞게’ 자는 게 못내 안타까운 모양이지요?

‘나 Group Sleeping해, 정말 괜찮은데’

 

 

 

 

 

금강송, 춘양목이라더니 역시 경상도 소나무입니다.

여기 소나무들은 굵기가 주는 묵직함이 강원도와는 또 다른 느낌입니다.

다음 회차 걷기를 위해선 오늘 평해를 거쳐 후포까지 들어가야 하는데 친구가 영덕에 와있다 하니 어쩐다?

고집스레 후포까지 갈려다 기다리게 하는 것 같아 평해터미널에서 만나기로 합니다.

37km, 일정대로라면 평해에서 잠시 쉬고 후포로 들어가 다음에 묵을 후포해수찜질랜드도 답사를 해봐야하는데...

서울과 평해 버스시간표를 점검하고 어디냐 전화하니

바로 코앞에 있다고 히죽 웃는 친구의 얼굴이 밉상도 아니고 그렇다고 곱상도 아닙니다.

  

 

 

다음 평해에서 영덕까지는 직선거리로는 30km 남짓이지만 해안을 따라 내려가면 거리가 꽤 멀어

나도 ‘낑가주이소’하는 포항에 사는 지인께 강구에서 영덕까지 픽업을 해달라나?

 

볼거리: 기성망양해변

난이도: 3-4개 낮은 언덕

교통: 동서울-울진 4시간 30분

숙식: 울진 동명사우나. 시설이 좀 낡고 수면실은 좁은 편이나 아이들은 별로 없슴. 욕조청소 양호.

 

37km

누적 234km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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