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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라운 게 좋아- 봉평골

fotomani 2014. 4. 8. 10:02

3.1 조선독립선언서가 낭독되었던 탑골공원과

일본군 군악대와 이왕직 양악대의 공연이 벌어지던 팔각정,

특히 뒷골목은 언제부터인가 노년층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느 신문기사 제목처럼 이 부근은 ‘실버 홍대앞’이 되어버린 것이지요.

건너편 국일관이나 삼일빌딩 뷔페는 좀 부유한 어르신네들이 찾아가는 곳이고

공원 뒷골목 쪽은 주머니가 가벼운 노인들이 포진하고 있다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서 노인이길 거부하는 어르신네들은 탑골공원이나 종묘 앞을 걷기 싫어

건너편 인도나 멀리 돌아다닌다고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낮엔 초여름 날씨를 보이는 요즘 막국수와 오리백숙이 먹고 싶어 고등모임을

낙원상가 끝 종로세무서 골목에 있는 봉평골이라는 곳에서 갖기로 하여 오랜만에 이 뒷골목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시간이 멈춰버린 골목입니다.

육의전빌딩이 있는 수표로로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탑골공원 동쪽 담장과 잇닿는 작은 광장은 몇 개의 포장마차가 모여 있는 노천 카페입니다.

삶은 오리 알에서부터 어묵까지 간단히 먹을 수 있는 안주거리와 막걸리와 소주로 말 그대로 선술집이지요.

집에 들어가야 하는 저녁까지는 노인들 세상입니다.

 

 

광장에서 오른 쪽으로 꺾어 뒷골목에 들어서자마자 맞부딪치는 실비집 입간판.

홍어찜, 콩비지, 돼지 껍데기, 삶은 오징어 거의 5천원 균일, 가격 착하지요?

담장에는 야외테이블을 붙여놓고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서 너 군데 모여 있는 이발소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비누냄새가 물씬 날 것 같은 세탁한 수건들을 빨래걸이를 길가에 내놓고 말리고

날씨가 따뜻해지면 비누 거품에 염색약을 바르고 거리에 나와 앉아있는 노인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유진식당 평양냉면. 이것만 가격이 올랐습니다.-우리야 괜찮다해도 노인네들 드시긴...)

나름대로 이 골목에는 노인전용 라이브뷔페가 있어

공연 안내문을 달력 뒷면에 매직펜으로 적어 내걸어 놓은 게 눈을 끕니다.

생음악과 댄스 스테이지도 있다 하니 좀 궁금해집니다.

또한 종교단체의 무료급식소도 빼놓을 수 없지요.

뒷골목이 끝나는 곳에 평양냉면을 잘하는 유진식당이라는 곳이 있는데

요즘은 인사동 아줌마들이 드나들어 냉면 값 올려놓은 게 흠이라면 흠인데

그나마 설렁탕과 국밥은 그리 오르지 않아 그것만도 다행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추억의 도시락과 음악이 있는 곳, 추억더하기.

교복을 입고 서빙해주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있고 DJ가 음악을 틀어주는 식당,

낙원상가 4층의 노인전용극장 들도 이곳에 모여서 모두 실비 제공된다 하니

가히 노인천국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자, 이제 오늘 모임장소로 갑니다. 종로세무서 골목이라고는 하지만 오래된 동네라 찾기가 만만치 않습니다.

전엔 서울 시내에 대 여섯 군데 운영을 했는데 지금은 하나만 하고 있고

메밀은 처갓집이 있는 봉평에서 가지고 온다는 둥,

무뚝뚝해 보이는 주인장은 겉보기와 달리 묻는 말에 대답을 잘 해줍니다.

에어컨에 붙어있는 사진엔 막국수와 메밀부꾸미도 있고,

추어칼국수란 메뉴도 새로 내놓고 있어 아이디어가 많은 분 같습니다.

 

 

 

 

 

 

미리 주문해 놓았던 한방 오리 백숙이 나옵니다. 중간 정도 크기의 무쇠 솥에 누룽지와 부추가 담겼습니다.

끓기 시작하자 주인장 색시가 먹기 좋게 손질해서 참새새끼들처럼 개인그릇을 들고 있는

‘노인’들에게 일일이 싸우지 않게 담아줍니다.

푹 익은 고기와 누룽지, 젊은 사람 취향은 아니지요? 그

러나 자극성이 없는 구수한 맛과 부드러운 육질은 우리 입맛에 ‘딱’입니다.

 

 

 

 

4명이 한 마리씩 먹으니 약간 모자란 듯하여 로스와 훈제 세트를 하나 더 추가합니다.

전 훈제는 별로지만 로스는 그런대로 담백하니 좋습니다.

배는 부르지만 그래도 막국수는 하나 맛을 봐야겠지요? 4명에 한 그릇씩 주문합니다.

전 비빔을 시켜 육수를 부어먹는 걸 좋아하는데 같이 먹으니 싸우지 말고 그냥 비빔을 먹어야지요.

 

 

배가 둥둥해서 뭐 들어갈 것 같지는 않지만 너무 먹는데 열중해서 시간이 좀 남습니다.

이제는 낮이 밤이 되고 노인에서 젊은이로 세대교체가 된 거리로 나가 호프 한 잔씩 하고 ‘쿨’하게 헤어집니다.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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