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친구 장인어른 문상을 갔다 구로시장에서, 다른 한번은 서울 둘레길 5코스를
걷고 가리봉 시장 차이나타운을 간 적이 있는데, 이번에 또 대림역 앞 구로 중앙시장
차이나타운을 가보게 된 것은 전적으로 지난 번 동문들과 여행을 떠나
부산역 앞 차이나타운에서 사온 마라땅콩 덕분이었습니다.
(갈색의 조그마한 게 혀끝을 마비시키는 산초입니다. 처음엔 좀 이상하지만 금새 중독됩니다.)
이전에도 중국 볶은 땅콩은 먹어보았지만 이 땅콩은 중국 산초와 매운 고추로 볶아
산초가 주는 혀끝의 마비감과 매운 맛으로, 하나 먹고 말지 하다가 또 하나 건져먹는
그런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산초와 매운 고추를 사다 내가 직접 땅콩을 볶아
먹어 보자는 충동에 그곳을 찾게 됐는데, 검색을 해보니 마라탕면과 꿔바로우가
유명하더군요. 지난 번 옆 테이블에서 뻘건 국물에 당면을 먹던 게 바로 마라탕면이었습니다.
(2호선 8번 출구로 나서자마자 만나는 번잡러움과 이국적인 느낌)
(전기로인 듯한 커다란 프라이팬에 반죽을 넣고 빵과 만두를 굽습니다.)
(만두, 빵, 꽈배기 모두 대륙적입니다. 깨작한 게 없습니다.
대개 하나에 5백원 천원 꼴로 중국 본토에 비하면 비싸지만 여기 물가와는 비교할 수 없지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전 구로시장이나 가리봉 시장과는 규모와 분위기부터
비교가 되질 않고 인천 차이나 타운이 관광지이면서 한국인의 입맛이나 관점과
타협을 했다면, 여기는 온전히 그들의 삶의 터전인 차이나타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런 모둠 견과류도 있군요.)
(남자 미용사들이 많습니다.)
(우리처럼 떡메로 반죽을 치고 있습니다.)
차이나타운은 대림역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지만 주로 중앙시장이 있는 대림역 남부
12번 출구에서 시작합니다. 내 느낌인가 역에 내리는 순간부터
중국음식 특유의 향신료 냄새가 나는 듯 합니다.
출구로 나오니 우선 시끄럽고 번잡스럽습니다. 중국말이 원래 그렇지요. ㅎ
(해바라기 씨 무척 좋아합니다.)
(오리와 돼지 부속물들)
(보신탕집도 있지만 잉어나 붕어 등 민물고기를 즉석에서 잡아 찜해주는 집들이 많답니다.)
골목으로 들어서니 길거리에서 파는 빵, 꽈배기, 만두, 순대...
순대는 엄청난 굵기와 보통 굵기의 순대가 있고 수제 소세지도 있는데
대개 이런 순대와 소시지가 때깔로 맛있게는 보여도 향신료가 강한 나라 음식들은
실패를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쩝.
결국은 오늘도 또 용기를 내지 못하고 침 흘리며 눈팅으로 만족.
빨간 한자 간판만 아니면 빵집 같은 <날씬한 원숭이>로 들어갑니다.
우선 실내가 깨끗하고 마라탕면의 국수를 당면이 아닌 옥수수면으로 고를 수 있어서지요.
그리고 다음에 친구나 가족과 오더라도 실패하지 않을 확실한 메뉴를 하나 잡아놓으려고요.
사진으로 봐 왔던 것처럼 깨끗합니다. 구석에는 마라탕에 넣을 채소와 면, 두부
완자 등 꼬치가 진열되어 있어 비닐 소쿠리를 들고 가 골라 담으면
저울에 무게를 달고 꼬치는 하나 당 1천원을 받네요.
마라볶음(상궈)가 아니라 국물이 있는 마라탕으로 해달라고 하고 번호표를 받습니다.
붐비는 시간이 아니라서 금방 조리 되어 나옵니다. 마치 조개 껍질 같은 그릇에
아까 골랐던 재료가 끓여지고 그 위에 마라 양념을 올려 놓았습니다.
마치 감전되는 듯한 자극성 맛, 사우나가 막 유행할 당시 전기탕이란 게 있어
멋모르고 들어갔다 주인에게 누전된다고 발끈했던 것처럼,
'누가 여기 마라탕 속에 12V 배터리 빠뜨렸나 봐요---'
거리 곳곳에 두부가게가 있더니 아래 두 개는 건두부와 두부 종류이고
위의 하얀 것은 하얀 목이버섯이랍니다.
정신없이 먹을 때 쯤 꿔바로우가 나왔습니다.
대파를 실처럼 채 썰어 옷입고 나오니 8월의 크리스마스 같은 느낌입니다.
말하자면 찹쌀 탕수육인데 겉은 바삭하고 속은 졸깃해서 맛은 있지만
소스의 신맛이 좀 강해서 소스가 따로 나왔더라면 더 좋을 뻔 했습니다.
꼬맹이나 여자 분들이 좋아할 듯한 메뉴입니다.
처음치고는 크게 실패 안한 독특하고 무난한 메뉴입니다.
이날 저녁 친구들과 당구 치며 그 얘기를 했더니 당장 내일 가보자는 듯
애절한 눈빛을 보냅니다. 쩝, 쩝.
다음 날 다시 가 식품점에서 꽃빵, 생선 완자, 산초, 옥수수면을 사들고
근처 <왕기 마라향궈 미식성>이라는 곳으로 들어 갑니다.
유리에 도삭면이라 붙어 있어 그것에 홀려 들어 갔던 것인데
메뉴판을 보면서 싹 잊어 버리고 홍소 돼지 갈비, 마라탕면, 우육탕면을 시킵니다.
여기 메뉴판엔 친절하게도 사진과 한국말이 함께 적혔습니다.
메뉴판이 우중충하지 않아 좋습니다.
음식이 나오는 사이 늙은 나의 친구들은 술병을 들고 예쁜 종업원에게
중국말로 어떻게 발음 하느냐 열심히 물어봅니다.
"얼궈토우--? 알궈토쥬--?" 학생 얼굴 모습은 나이와 상관없이 순진해 보이는가요?
드디어 김이 무럭무럭 나는 홍소 돼지갈비가 나왔습니다.
내가 여지껏 보았던 푸석한 깡통 홍소갈비로 만든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고기 냄새를 완전히 죽여 주진 못했지만 생갈비로 이렇게 푸짐하게
만들어 주다니... 매운 거 못먹는다 앙탈부리던 친구 입도 찢어집니다.
다음에 나온 우육탕면과 마라탕면, 어제 먹은 것과 달리 골라 넣은 게
아니라 내용물은 빈약하지만 양념 맛은 빠지질 않습니다.
그러나 역시 건데기가 별로 없으니 좀.
오늘은 오히려 우육탕면이 좋습니다.
남은 마라탕면과 우육탕면 국수를 홍소갈비 소스에 넣어 비벼 먹습니다.
이게 더 훌륭합니다.
나중에 홍소갈비 소스로 마지막까지 먹었으니 오늘도 크게 실패하진 않았군요.
뭔가 아쉬워하며 알딸딸해져 시장을 한 바퀴 돌며 구경하다가 그 뭔가를
발견합니다. <바삭한 오리구이>.
배도 부르기도 하고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아쉬움이 남기도 하고
누가 중국여자들은 오리 목뼈에 뿅간다는 말을 듣고 망서리는데
테이블에 앉아 있던 손님이 반 마리도 팔고 맛도 괜찮답니다는 말에 덥썩,
"여기 반 마리에 호프 두울---"
오리발, 날개, 모래집은 서비스고 반마리가 나왔는데 워째 다리가 둘?
하나는 오리 다리이고 하나는 날개라는데 어째 모두 똑 같이 보이지?
사족오리(압.鴨) 아니여?
먹으며 보니 커다란 스텐레스 탱크 속에서 오리를 건져 다른 탠크로
집어넣고 반복합니다. 무슨 새로운 조리법인가?
그게 아니고 한쪽에 불이 있어 그 속에 오리를 매달아 놓고 구워지면서 기름이 빠지면
그 옆 탱크에 옮겨 넣어 보온을 한답니다.
서울에서 이렇게 변질되지 않은 중국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이국적인 곳이
어디 또 있을까 싶습니다. 더구나 우리 입맛에도 대충 맞고 의외로 깨끗한 음식점들
오늘 사간 식재료가 떨어지면 다시 한번 들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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