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토요일 오전입니다. 빈 사무실에 나갔다가 <한국 전통사찰의 미학, 극적인 빛의 순간을 찍다>란
제목으로 노재학이라는 사진작가의 순회사진전이 열린다는 기사가 보입니다.
사진엔 내소사 천장 우물반자의 악기를 찍어 편집한 사진과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 불단 용그림도
있습니다. 모두 저절로 마음이 평안해지는 내가 다 좋아하는 주제와 단청들입니다.
<내소사 개암사 http://blog.daum.net/fotomani/70319 >
어느 봄날 들렀던 선암사 뒷뜰이 생각납니다.. 낮은 굴뚝이 인상적인 나만의 아늑한 공간이었습니다.
반가운 풍경입니다.
실제 단청보다는 채도가 강조된 듯하지만 그렇다고 본질을 훼손하지 않습니다.
쌍계사 얼굴을 들어 부처님을 친견하고 하늘을 올려다 보면 거기에 수미산이 있습니다.
대충 보고 내려 가려는데 계단 참에서 작가로 보이는 분이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어떤 작가들은 작품의도를 일절 말하지 않는 분도 있는데 잠시 들어 보니 재미있습니다.
위 링크로 들어가서 볼 수 있는 내소사 대들보에 장식된 용 사진입니다.
물론 이 분의 작품사진과는 많이 다르지요. 사실적인 사진과 작품사진의 차이입니다.
그게 작가의 숨결이지요.
그냥 지나치며 들으려는데 해설이 재미납니다.
내용을 정리하면 고기를 입에 물고 있는 용은 원래 물고기를 뜻하는데 - 어변성룡도 漁變成龍圖처럼 -
절집은 목재로 이루어졌으므로 용을 장식해 불을 예방하려 했다는 겁니다.
나는 용 장식을 반야용선을 뜻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지만 어찌 됐건 작가의
견해가 재미있어 다음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0여분 더 들었습니다.
평론가들 중에 조선사의 백지원, 글쓰기의 강원국, 이오덕, 한국미술의 오주석, 추사에 관한 이성현,
역사 전병철, 군사 김종대 등 한번 책을 보면 중간에 내려 놓지 못하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학을 전공하신 노재학이라는 사진작가도 나의 버킷리스트에 올려야겠습니다. 근 3 백 쪽 쯤 되어 보이는
<한국산사 단청세계>라는 도록 겸 책을 사려다 들고 다니기 무거울 것 같아 다음으로 미룹니다.
기분 좋은 전시였습니다. 근처 음식점에서 묵은지 고등어 조림이라는 걸 시킵니다.
펄펄 끓는 뚝배기는 마음에 드는데 탄 냄새와 비린내가 납니다.
'좀 탔습니다.' 씩 웃으며 직원이 그냥 들이밉니다.
내가 개업하고 있는 '나와바리'에서 처방전에 적힌 약제를 대체약으로도 조제 받지도 못한
무능력과 무기력 감으로 아침부터 구겨진 기분을 또 다시 구겨 놓습니다.
오늘은 그런 팔자려니 하며 앞니로 탄 묵은지를 잘라내 먹으려니 잘 잘라지지 않습니다.
젊은 여주인에게 잘라먹게 가위를 달라며 한 마디 했더니 묵은지만 몇 조각 넣어 끓인 뚝배기를
가져오더니 반도 안 먹은 뚝배기를 싹 가져갑니다.
'술이 아직 반 병이나 남았는데 비린내 나던 반 토막이나 남은 내 고등어는 어디로???'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전> 전시 중인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갑니다.
단청사진전도 11일까지였는데 이것도 13일이 마감이네요.
경주박물관에는 유난히 토우가 많아 그 전시를 기다리곤 했는데
절터에서 쏟아져 나온 견성見性 바로 직전까지 간 나한들의 표정은 과연 어떨까요?
토우에서처럼 노골적이면서도 재미있고 순박한 그런 표정들일까요?
최소 5백년 이상은 되었음직한 인간세계는 지금의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근심 걱정의 표정은 지금보다 더 복잡한 것 같습니다.
속마음이 가면을 쓰지 않고 그대로 표출되어서 일까요?
단순할 것이다라는 예상은 여지없이 깨졌습니다.
어두워서 보이지 않던 제목이 이제야 보이네요. 현대적 감각의 조각
어느 나한이 나와 가장 닮은 얼굴일까요?
백남준의 작품은 우리의 위선을 질타했었습니다.
백남준 작품을 연상시키는 나한과 스피커탑은 무얼 뜻할까요?
작가는 열심히 과거와 현재의 연결 끈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듯한데
현대인들은 충격과 선정적이 아니면 복잡한 것에 그리 관심을 가져 주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닮은 나한의 얼굴 표정입니다. 구겨진 걸레 같은 표정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그 또한 잊혀지겠지요.
닥다리로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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