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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섬 올망낼망길 (진도 의신면 접도 웰빙등산로)

fotomani 2009. 12. 28. 13:59

 

‘원장님, 크리스마스 때 뭐하세요?’라는 말에 샌드위치 토요일을 쉬기로 했을 때까지만 해도,

아니 25일 새벽에 깰 때까지만 해도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다.

진도방면으로 결정한 것은 서천에 있는 친구가 쓰지 않는 목공공구를 가져가라는 것과

새벽에 얼핏 열어본 ‘전라도닷컴’에서 접도 웰빙산행에 대한 기사 때문이었다.

불과 150미터밖에 되지 않는 높이에 바다와 섬을 보며 산책(?)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요즈음 들어 거의 산에 간 적이 없는 나에게 대단한 매력이 아닐 수 없었다.

 


접도는 진도 금갑마을과 연륙교로 이어져 있었다.

연륙교를 촬영하는 동안에도 진도답게 하얀 개 한 마리가

반갑다고 꼬리치며 차 곁에 앉아 이방인을 맞아준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지난 10월 10일 열렸던 가족등반대회와

신년 해맞이 산행에 대한 현수막이 바닷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전혀 사전지식을 얻을 시간이 없었던 나는 무작정 길을 따라 섬 남쪽으로 내려가니

길옆에 진도군 남망산 웰빙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나온다.

차를 세우고 작은 수퍼에 들려 주인 할아버지께 물으니

안에서가 작은 인쇄물을 들고나와 손으로 가리키며 자세히 알려준다.

 

 


할아버지 말대로 제2주차장에 차를 대니 웬 중년남자가 곁으로 와서

 ‘저쪽으로 차를 대는게 오히려 낫지 않겠냐’며 안내를 해주며

또 다른 산행지도를 주고 친절히 가리켜 주는데

이 사람이 이 작은 섬 등산로를 개척한 장재호씨였다.

 


가파른 등산로를 따라 쥐바위로 올라가니

바로 아래 여미항과 제일수산 그리고 방파제 사이로 들어오는 어선이 하얀 궤적을 그리고 있다.

날만 맑으면 파란 바다 위에 점점이 떠있는 섬들이 환상일 텐데 아쉽다.

둘러보고 내려왔는가 했는데 곧바로 또 올라간다.

마치 팔봉산처럼 능선에서 오르락내리락 한다. 

산길은 앙상한 나뭇가지로 푸르름은 덜하지만 낙엽이 쌓여 폭신하게 걷는 느낌이 좋다. 

 

 

 


다음 봉우리로 가니 아까 들렀던 쥐바위에 등산객 3명이

건너편에서 사진 찍고 있는 나를 보며 손을 들고 포즈를 취해준다.

내 착각인가?

아직 병풍바위도 다 못 왔는데 벌써 3사람은 나를 추월한다. ‘안녕하세요’란 말을 남기고.

나는 산에 오르면 숨이 차서 여기저기 셔터를 누르며 슬슬 구경하고 가는데,

다른 등산객들은 뭔 시간이 바쁜지, 체력단련을 하는 건지

바쁘게 오로지 앞만 향해 나가는 걸보면 여유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다. 그들은 그 짧은 시간에 내가 느끼고 본 것을 다 집약해보는 축감법(縮感)법을 쓸 것이다!

 

 


병풍바위를 지나니 12개 커다란 나무줄기가 한 뿌리에서 나온 커다란 나무가 보이는데

줄기마다 12간지를 적어 놓았다.

등산로 만든 사람들의 재치가 돋보인다.

섬은 아열대성 나무들과 동백으로 이루어져 동백이 군락을 이룬다.

간간히 꽃망울을 터뜨린 것이 있어 한창 때 오면 장관일 것이다.


그저 바라만 봐도 좋을

부부느티나무 옆에서

사랑을 할려거든 이렇게 해라

서로 다른 족속들이 초야에 숨어

연리지 사랑법을 설파하고 있다

음양이 팽창한 남 망 산 중턱에서

은밀한 사랑을 엿볼 줄이야

자연이 만든 저 위대한 걸작 앞에

시인은 어떤 비유로 발설하리

살아서 반상(班常)의 벽 허물지 못해

이루지 못할 사랑이라

죽음으로 타파

나무로 환생해

나누는 아픔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한몸 되자 심장을 파고들까

이것이 연리지 사랑이라 정의할까

인간사 국경없는 사랑을 보는 듯

(2009.7.4. 진송 문희숙 연리지사랑)

 


병풍바위를 지나자 부부느티나무가 나오는데 여성 느티나무-참 직설적이다-는

다른 나무와 엉겨서 한 나무로 된 가운데 구멍이 생긴 연리지이다.

시인도 산에 오르느라 숨이 찼던 모양이다.

오르락내리락 하다가 희안한 광경을 보았으니 ‘음양이 팽창한’이라는 표현이 절로 나왔으리라.

여성나무에서 남성나무를 찾으니 묘한 각도에서 절묘하게 힘을 불끈 솟구쳐 내며 힘자랑하고 있다.

다른 각도에서 보면 평범한 나무인데...

 

 

 


이 작은 섬에도 산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선달봉으로 가면서 돌로 쌓은 성벽의 흔적이 희미하게 보인다.

선달봉을 가파르게 올라 내려오자마자 선달봉 삼거리가 나오고 여미 사거리로 향한다. 

여미 사거리에서 오르막으로 조금 오르니 넓은 암반이 나오는데 여기가 갑판바위이다. 

건너편 섬과 김양식장이 옅은 해무 사이로 뿌옇게 보인다.

그래도 간간히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이 보이니

마음의 눈으로 맑은 날 조망을 짐작해볼 수는 있겠다.

 

 

 

 


이름도 희안하게 지었다 생각하며 바로 곁에 있는 말똥바위로 가니 이곳이 바로 절경이다.

흩뿌리는 이슬비 속에 이처럼 날씨를 원망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삐죽하게 바다로 뻗어 나간 바위는 타이타닉의 뱃머리를 연상시킨다.

멀리 하얀 꼬리를 그리는 어선이 지나가고 오른 쪽으로는 솔섬바위와 활처럼 휘어진 몽돌해안이 보인다.

 한참을 구경하다 아쉬운 마음을 묻어두고 동백계곡으로 내려간다.

 

 


동백꽃은 꽃잎이 따로 떨어지지 않고 꽃망울 째로 ‘후두둑’ 떨어진다.

그래서 서글퍼진다는 것인데 때 이른 동백이 몇 군데 피어 꽃봉오리를 떨어뜨리고

여행객은 행여 이직도 숨을 쉬는 동백꽃을 밟을까 조심하며 내려오니

동백사이로 솔섬바위와 해안이 자태를 들어낸다.

바닷가는 책을 쌓아놓은 듯한 적층(積層)바위와 몽돌로 이루어져 산책하기 좋다.

솔섬바위 아래로 가니 해식동굴이 몇 개 있다. 속에 들어 앉아 바다를 감상하니 아늑하다.

이 좋은 경치를 그냥 지나치려는 여행객을 굳이 불러 같이 앉아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다.

 

 

 

 

 


 

이제 반환점을 돌았다.

깎아지른 바위 틈새에 만들어 놓은 계단을 올라 다시 숲을 통해 여미 사거리를 향하다

길을 잘못 들어 선달봉 삼거리까지 간다.

여기서 병풍계곡을 통해 바닷가 맨발체험로로 나가니 숲속에서는 못 느꼈던 비가 제법 뿌린다.

배낭 속의 간이 우의를 꺼내보니 이럴 수가?

지퍼백 안에 있는 것은 우의가 아니라 제주여행 때 넣어두었던 커다란 쓰레기 비닐봉투 2장이다.

우선 카메라를 꽁꽁 싸서 배낭 깊숙한 곳에 넣고 나머지 쓰레기 봉투로 등쪽을 덮지만 별로다.

비가 적게 내리는데 감사하며 백사장을 질러 여미로 향한다.

     

 

 


다행히 기능성 속옷은 젖어도 마르면서 체온을 덜 뺏기는 것 같다.

패딩이 밖은 비로 안은 땀으로 젖은 채로 숨을 헉헉대며 출발지인 제2주차장으로 가니

아까 보았던 장재호씨는 보이지 않고 차들도 많이 빠졌는데 그제서야 돌로 만든 기념비가 읽힌다.


‘체력은 정력’

 


사족: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아깃자깃한 산행로를 ‘접도웰빙등산로’라는 이름으로는 너무 무미건조하다.

나 같은 사람에게야 등산이겠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작은 섬 낮은 산을 오르막내리막 아깃자깃 할테니 오르망 내리망,

‘나비섬 올망낼망길’로 이름 지으면 어떨까?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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