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Y

작업일지(3) - 목공과 여자의 마음

fotomani 2009. 10. 4. 15:36

자식도 남에게는 착한 아들, 딸로 보이고 말을 잘 듣는 것처럼, 남편이란 ‘직책’도 다른 아낙네들한테는 ‘어쩜 저런 남편이 다 있을까?’라는 소릴 가끔 듣지만 마누라 앞에서는 한없이 작아지는 속성이 있다.


‘가구’라는 것을 만들어 보겠다고 집안에 나무가 들어올 때부터 집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고 내심 ‘저러다 땔나무만 쌓이는 거 아냐?’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딸네미가 간단한 수납장 만든다고 반제품 상태로 들어온 합판쪼가리를 보고도 속이 쓰렸는데 이젠 남편까지 아이들보다 한술 더 뜨니 아마 말해봤자 입만 아프다고 아예 참견하고 싶은 생각조차 없었을 것이다.

 

마당에 다시 나온 거실장 - 연휴 마지막날 아침 일찍 을지로 페인트 가게에서 사온 수성 바니쉬로 마감을 한다.

첫날 서랍을 몇 개 짜서 계단참에 쌓아 놓으니 내려와 보지도 않던 집사람이 식구들과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갈 임박에야 겨우 보고 그나마 안 되면 잡동사니 상자로도 쓸 수 있겠다는 궁리가 생겼는지 그제서야 ‘별로 크지 않네’라고 딱 한 마디 한다.

 

칠이 어느정도 되가니 마당에 핀 달맞이꽃도 얼굴을 붉히며 보라빛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걸로 끝났나 했더니 그 주에 또 나무가 뭉텅이로 배달오니 아예 건들지도 말도 하지 않는다. 저게 큰 일 내는구나 라고 생각했겠지. 하긴 내 탓으로 6개 조각이 제 치수보다 30미리 짧게 재단 되어왔으니 선반이고 문짝이 날라간 터에 나도 맥이 풀려 버렸다. 어찌어찌하여 간막이 4개는 다른 조각으로 살려서 조립해놓고 2층으로 올라가니 그래도 궁금했는지 ‘치수대로 오지 않았다더니 제대로 됐어요’ 묻는다.

 

이제 모양이 잡혀가는 장식장. 치수를 잘못 재단해서 중간에 구멍만 있지 올라서야 할 선반이 없다.

추석 연휴 전날 사포질하고 예전에 쓰다 남은 칠로 대충 해놓으니 그제서야 ‘나무 색깔 이쁘네’ 한 마디 한다. 그런데 역시 마감은 힘이 든다. 아니 정성을 쏟아야 한다. 어떻게 된 칠이 물에 흠뻑 젖은 행주로 닦아놓은 밥상처럼 물웅덩이가 져 쉽게 마르질 않고 덕지덕지 딱지만 앉는다. 120번으로 사포질을 하고 다시 얇게 칠해도 그런 현상이 생겨 칠은 했으되 5미터쯤 후방에서 봐야 그럴 듯하지 가까이서 보면 울퉁불퉁 들쑥날쑥이다.

 

왼쪽 장 여닫이문도 치수가 모자라 비워뒀는데 우드워커의 <야술가>님의 나눔으로 얻게될 하드우드로 서툰 솜씨지만 집성해봐?

이럴 때는 중단하고 손을 떼는 것이 상책이지만 어디 맘이 그런가? 손만 뗐다 뿐이지 이튿날 산소에 가서도 큰집에 가서도 머리 속은 ‘왜 그럴까?’가 뱅뱅 돌아다닌다. 오후에 집에 돌아와서 한번 다시 칠하고 그대로 뻗어버렸다. 뱅뱅 돌아다니는 ‘왜 그럴까?’와 형이 담근 솔눈술 때문에...

 

문짝이 초라하게 틀어밖혀 있다.

기특하게도 연휴인데도 을지로에는 아침 일찍 문을 열어놓은 가게가 하나 있다. 유광 수성 바니쉬 하나 사들고 집으로 온다. 다시 120번 사포로 박박 밀고, 아니다. 칠한게 아까와서 다 밀지도 못했다. 그리고 칠을 하니 물웅덩이처럼 분리되는 현상이 없다. 급한 마음에 원액으로 해서 붓자리는 조금 났지만 다음 주에 다시 사포질하고 칠하지 뭘.


그런데 다른 집에서는 선반 하나만 매줘도 술도 받아주고 난리 난다는데, 나 원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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