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갤러리

이토의 야심작 대한의원

fotomani 2014. 7. 8. 10:40

서울대학교 부속병원에 가보면 대한의원이라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습니다

가끔 세미나에 갔다가 사진 몇 장 간직하고 있었는데 근대건축물로만 블로그에 올리기엔 

뭔가 걸리는 것이 있어 여태껏 그대로 먼지 쌓이고 있던 사진입니다.

 

우선 대한의원에 대한 문화재청의 소개 글을 먼저 볼까요?

 

‘1907년 대한제국 정부가 임금의 명령에 의해 의정부 직속으로 창경궁의 바깥 정원인 함춘원의 언덕에 지었다

일본인 기술자의 설계로 1907년 건물을 짓기 시작하여 1908년에 완성하였다

처음에는 병동과 부검실, 의학교가 지어졌으나 현재는 본관건물만 남아 있다.

1908년 대한의원은 조선총독부의원으로 바뀌었고, 1911년에는 부속 의학강습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26년에는 경성제국 대학에 포함되면서 대학병원으로 되었다

광복 뒤에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병원의 본관이 되었고

1970년대말 새 건물이 세워진 뒤에 부속건물이 되었고

현재는 서울대학교병원 부설 병원연구소 건물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설명을 보면 대한제국에 의해 설립되어 일제 강점기에 어쩔 수 없이 조선총독부의원이 되었다가 

경성제국대학에 소속되어 대학병원으로 확장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으로 이어져 한국 의료의 정통성을 이어온 것처럼 보입니다. 전혀 거부감이 없지요.

 

그런데 지난 토요일 집으로 들어가며 읽던 신문에서 서울 의대 황상익 교수의 글

<‘이토의 야심작대한의원...일본인들의 한국 이주 위한 책략>이라는 기사를 읽으며 

꺼려지던 게 무엇인지 알 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대한제국이 일본차관을 얻어 기존에 있던 광혜원(제중원으로 개칭), 

관립 의학교 등을 통폐합하여 대한제국의 보건의료 체제를 대한의원에 집중 시켜 장악하고

일본인 이주자와 식민지 통치자들을 위한 최상급의 병원을 짓게 만들었다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일제가 을사늑약을 강제로 체결하자마자 한국이라는 국가의 모든 권한과 기능을 빼앗기 위해 통감부를 설치하고

한국 시정 개선에 관한 협의회라는 기구를 만들어 한국을 통치했는데

의료분야는 190649일 열린 3차 협의회부터였다 합니다.

 “경성에는 한성병원(일본 거류민단병원), 적십자병원, 광제원, 의학교 부속병원이 있다고 하지만 

전문적인 병원 체계와 설비를 갖춘 것은 한성병원 뿐이다

다른 세 병원은 규모가 작고 분립되어 사회에 도움 되는 것이 적으니 통합해서 적십자 병원 하나로 하면 될 것이다.” 

결국 자생하였거나 일본색이 없는 병원은 통폐합 시켜 축소시키고 

명실공히 일본에 의해 최고의 의료기관인 대한의원을 설립하겠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하겠습니다.

 


년도에 따른 의료변천사를 보면 일제의 강압에 의해 의료보건 분야를 장악하려는 음모가 더 적나라하게 나타납니다.

 

1884 갑신정변. 민영익을 앨런이 치료하여 목숨 구함.

1885.4.10. 이에 고종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광혜원 설립.(현 헌법재판소에 위치)

                    4.23. 제중원으로 개칭.

1886(1899). 관립 의학교 부설. (관훈동 김홍집의 집)

                  내부의원 설립 (경복궁 영추문 건너편)

1900. 내부의원을 광제원으로 개칭.

1902. 광제원과 별도로 의학교 부속병원 개설.

1904. 1900년 세브란스의 거액기증 받아 남대문 복숭아골에 세브란스 병원 준공.


1905.11.17. 을사늑약 체결.

        이후 한국의 권한과 기능을 장악해나가는 과정의 일환에 보건의료도 당연히 중요한

                    과제로 포함됨.

1906. 대한제국 의료 중추 역할을 해온 광제원과 의학교를 폐합하여 대한의원을 창설한다는

                     계획이공식 선포. - 이로써 우리 손에 의해 또는 민간인 간 교류에 의해 설립된

                    의료기관의 활동이 크게 위축됨.

1907.3.15. 대한의원 관제 발효.

                   “원장은 고문과 협의한 후 원무를 정리한다.” 이로부터 일본인이 고위 관리직을 맡게 되어 

                  육군 군의총감 사토 스스무가 원장이 됨. 이후 실무책임자는 모두 일본인으로 교체.

1908.10. 창경궁 외원 함춘원 자리에 대한의원을 비롯한 부속건물 완공. 개원.

                  대한의원 건설비용 40여만원은 정부 예산의 2%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일본 차관으로 메꿈.  

                 (년도와 날자가 자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큰 줄기를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을듯)

 







일본인 아사히 기자는 대한의원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모범병원 대한의원의 개원식이 거행되었다... 대규모 둥근 건물의 아름다움은 한성의 전 시가를 압도하기에 충분하며,

규모와 설비가 일본 유수의 병원에 비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한국인도 의학교학생이 되고 한국인도 치료 받아서 대한민국 의료 근대화에 도움을 주지 않았냐구요

당시 한성과 경기도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241만명이고 일본인은 47천명이었는데 

입원환자의 6-70%가 일본인이었고, 이곳을 이용할 수 있는 한국인은 

무료 시료환자 외에 비싼 진료비를 지불할 능력이 있는 극소수 특권계층의 한국인이었다 하니 

대한의원은 한국인을 위해 지은 병원일까요? 일본인을 위한 병원이었을까요?

 


그뿐만 아니라 대한의원 관제에 따르면 대한의원은 내부가 관장하던 병원업무와 학부 소관이던 의학교육

그리고 위생국이 담당하던 보건위생행정을 모두 포괄하는 기구이므로 

최고위정부기구인 의정부 직속기관이었습니다

결국 한국 의료 장악과 식민지를 유지할 일본인들의 질병관리를 위한 병원까지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으로 꿩 먹고 알 먹기, 땅 집고 헤엄치기 책략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겉으로 내건 명분은 한국의 의료 발달이었다.’ 라고 황상익 교수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경향신문 2014.7,5 황상익의 의학 파노라마. 많이 참조)


닥다리 블로그

http://blog.daum.net/fotoma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