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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쟁이 닥다리

fotomani 2014. 6. 24. 09:19


아마 중 고등학생 때 막연하게나마 

동해안을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따라 내려가 봐야겠다고 생각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만큼 깨끗한 바다와 멋진 풍광을 지닌 곳이 동해안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것이 요새 말로 아웃도어, 백 패킹이니

그야말로 배낭에 메고 가야할 품목을 하나하나 적어 내려가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는 일이지요

낭만적인 꿈은 여행 말미에 대개 깨지고 길 떠나면 개고생이란 구절만 머릿속에 뱅뱅 돌게 되지만 

그래도 여름이 오면 또 다시 그 생각이 꿈틀거리니 그거 희한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코란도 패밀리를 하나 사서 원 없이 전국을 돌아다니던 때가 있었습니다

짐칸에는 먹을 것과 식기 등을 바리바리 쟁여 넣고 

비포장이란 비포장을 구석구석 하루 종일 몇날 며칠 운전을 하고 다녔으니

아이들이 자라 제 생각을 표현할 때쯤 싫다라고 말을 듣는 것도 당연하다 하겠습니다

아들이 대학생일 즈음, 둘이서 별로 얘기할 것도 없지만

남자끼리함께 여행을 하는 것도 그럴 듯해서 주문진으로 가잤더니

아들이 주섬주섬 냄비를 하나 들고 나섭니다. 오랜만에 옛날처럼 길거리에서 뭘 끓여먹고 싶다나요?

 ‘, , 난 이젠 싫다라고 손사래 쳤지만, 그렇게 여행의 추억은 좋든 싫든 꽤 오래 남는 법입니다.

 


제가 걷는다라고 얘기하면 나오는 말들이 있습니다.

 ‘혼자?’, ‘어디서 자?’, ‘뭘 먹어?’ 이런 건 의례 나오는 말이지만

뭘 생각하느냐?’까지 밀어붙이면 상당히 고차원에다가 대략 난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나는 뭘 생각하며 걸을까요

굳이 정의하자면 나에게 걷는다는 건 생각한다보다는 기계적인 보행과 여행으로부터 받는 느낌입니다.

 



걷는 걸 어찌 하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겠지요

운동에 관한 한 내가 관전을 하면 꼭 지는 것 같아 기피증 비슷한 걸 가지고 있는 편인데,

남들이 산에 간다 해서 머리에 핏줄이 불끈불끈 솟아올라 터질듯해도 

그저 남들도 다 그러겠거니 하며 따라다닐 정도로 미련퉁입니다

처음엔 다소 낭만적으로 거기에 장난기도 좀 더해 

고작 16 km 정도를 걸었을 뿐인데도 고관절, 무릎에 오는 통증이 장난이 아닙니다

장난기가 꼈으니 너 좀 혼나보라는 뜻인가요

다행히 요즘은 그런 통증이 오지 않지만 

그래도 관절이라는 기관은 타서 없어지는 양초와 같아서 무리가 가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전방 20여 미터 앞을 주시하며, 발뒤꿈치를 먼저 디디고 발바닥 바깥쪽으로 해서 앞쪽까지 디디라고요

글쎄-- 발바닥 구조가 그렇게 생겼으니 당연히 그렇게 걷게 되는 것 아닌가요

그저 나에게 편하게 걷습니다

머리에 달려있는 눈으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치 타인의 발이 오른 발 내디디고 왼 발 내디디며 기계적으로 걷고 있는 걸 보는 것처럼.

 


혼자 걷는다니 다 알고 있다는 듯이 씩 웃습니다.

 ‘혼자라는 단어에 외롭다거나 멜랑꼴리가 스며들어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요

걸을수록 땀에 절어 노숙자를 닮아 가는데 구름이 선데이(Gloomy Sunday)'는 뜬구름 잡는 이야기라는 것을

상상과 현실의 간극이 얼마나 큰 지는 걸음쟁이들은 손쉽게 알 수 있습니다

혼자 걷는다는 불안감은 초기에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가는 곳이 별난 곳이 아니라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긴 하지만, 낯선 곳에 뚝 떨어져 혼자 있다는 건 

잠시 동안이라 할지라도 내가 알고 있었던 세상과 격리된다다는 뜻이겠으나,

-사실 이렇게까지 분석적으로 얘기하는 사람도 없겠지만

통신수단이 발달한 요즘은 그것도 완전한 고립은 아닙니다

아니지요, 그렇게 하면 그게 바로 단절을 자초하는 게 되겠군요

그것은 바로 도시생활 속에서도 이어폰을 끼는 순간, 액정을 들여다보는 순간 

세상과 담쌓게 되어버리니 혼자라는 것이 유별난 사람이 겪는 그리 딴뚱한 경험도 아닙니다

사람이 섞여 살게 돼있다 하더라도 개인의 삶이란 것이 어차피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라면 

혼자 걷는다고 이상하게 볼 일도 아니겠습니다.

 


느낀다혼자?’라는 질문 이외의 모든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습니다

걸으며 눈으로 보이는 풍경들은 처음엔 그저 밋밋합니다

머릿속엔 온통 오늘 목표지점까지 어떻게 가나 얼마나 남았나 하는 생각으로 차있으니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그러나 흐린 날엔 그저 회색바다, 맑은 날엔 그저 푸른 바다로 밖에 보이지 않던 바다가 

수많은 빛깔을 지니고 있고 아침 햇살이 투명한 파도를 투과하며 내는 색깔이 그렇게 변화무쌍한지

이름 모를 새가 왜 저렇게 내 뒤를 따라오며 울고 있는지, 메뚜기는 왜 아스팔트 위로 나앉았는지

새싹의 투명한 잎새가 왜 그렇게 갖난 아이의 손을 닮았는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될 무렵이면 

깨끗하게 갈아놓은 밭을 보며 농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마음의 여유가 생긴 겁니다

똑같은 음악이라도 연주자에 따라 지휘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듯

걸으며 우리에게 다가오는 사물과 사람들을 여유로운 관점에서 

나아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도 있겠지요

이제야 비로소 이기(利己)를 겨우 벗어나게 된 것 아닐까요? 그게 바로 소통인 것이지요.

 





그러나 사색까지는 제게 아직까지 해당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아직 덜 여물어서인지 오롯이 생각만 할 수도 없고 

흔히 말하듯 걸으면 온갖 고민 다 떨쳐버릴 수 있다는 더 더욱이나 아닙니다

잠시 잊을 순 있겠으나 자신이 헤쳐 나가야 할 고민과 세상사가 어떻게 나에게 분리되어 나가겠습니까

공간적 이동이 주는 착시일 뿐이지 돌아오면 결국 나의 일상은 그대로입니다

! 한발 뒤로 물러서서 처신할 수 있는 여유는 가질 수 있겠습니다. 그게 그 얘기인가?

 



걷는다는 걸 거창하게 치장할 것도 아니고 추운 비바람이나 뙤약볕 아래 걷는 것이 그리 낭만적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한기와 갈증으로 목이 타들어가는 중에 만난 솥발 사이 폭신한 소로, 새롭게 다가오는 바다

우연찮게 들른 밥집에서 받은 정성스런 밥상, 전혀 모르는 사람과 반갑게 주고받았던 이야기들

정자에 앉아있던 노인네들로부터 받아먹는 얼음물 한 대접, 사과 한 쪽

고개를 숙이면 주르르 떨어지는 땀방울

낮 동안 쌓인 피로를 덜어주는 사우나 냉온탕과 마사지 의자가 주는 현실적인 소소한 고마움과 달콤함 들이 

나에게 또 인터넷 위성지도를 만지작거리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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