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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새 걷기- 코엑스에서 집까지

fotomani 2014. 5. 12. 01:56


이번 주 바닷길 걷기는 토요일 꼭 봐드려야 할 환자와 학술대회 때문에 부득이 미룰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 수 없는 무거움이 벌써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습니다

이미 토요일에 등록을 해놓았기에 오늘 특별히 참석해야할 이유는 없었지만 

집에 틀어박혀 있자니 그것 또한 못할 일이라 집까지 데리러 오겠다는 후배의 차에 올라타고 나서도 머리는 텅 비었습니다.

 


열린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바람소리에 바로 앞자리 후배의 말을 제대로 못 듣고 있었는데

  , 형민이가 나더러 우택이형이라 그러든데라고 뒤를 돌아보며 웃으며 다시 크게 말해줍니다

앞자리에 앉은 후배의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서 아들놈과 우연히 만나 그런 소릴 들은 모양입니다

아마 아들놈이 술이 좀 취했던 모양이지요

한참 낄낄대며 농담 따 먹기 할 얘깃거리인 데도 

그대로 모래밭의 파도처럼 흔적도 남기지 않고 하얗게스며들고 말아 버립니다.

 



세미나도 귀에 들어오질 않아 바깥으로 나와 기자재 전시장에서 몇 가지 재료들을 사는데도 

주변 사람들이 딴 세상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봉은사에 들러 연등 전시나 보면 좀 나아질까?

매번 전시하던 보우당에 들르니 올해는 전시를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七十一果病中作 板殿, 추사는 저 글을 쓰고 다음 날 죽었지...’ 옛 사람들은 자신의 천명을 예감을 한다지만 

어찌 하루를 남기고 저런 혼백이 살아있는 필력을 보여 줄 수 있었을까

백조는 마지막에 한번 운다는데 바로 그런 것일까?

 



세미나를 더 듣겠다는 후배와 헤어져 무작정 집 방향으로 걸어갑니다

이 동네는 제가 몇 년 전까지 개업을 하고 있었던 곳이라 낯익은 곳이지만 

오늘은 믿었던 사람이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가슴 한 귀퉁이가 비어버린 기분입니다

나의 기분을 알아주기나 하듯 주택가 뒷골목에는 예전에 보지 못했던 작은 술집들이 

나의 빈자리를 메꿔 주겠다는 듯이 나의 눈을 끕니다.

 





영동대교를 숱하게 오갔지만 항상 차를 타고 지났는데 난생 처음 두발로 걸어 봅니다

예전보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시 영동대교는 사람보다는 차량통행을 위한 회색의 다리입니다

그래도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자건거를 타고 지나는 사람들이 있어 삭막한 분위기를 다소 누그려뜨려 줍니다.

 





군자교에서 뚝방길로 들어섭니다

벚꽃은 이미 져버리고 없지만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아 어느덧 내 머리를 누르던 무게감이 좀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이쯤 되면 젖은 낙엽이 되어 남들에게 걸리적거리는 것도 자존심이 상하고 

나름대로 사고에 얽매임이 없기를 원하지만 나 혼자만 사는 것도 아니기에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중랑교에는 도로공사로 뚝방길로 내려 갈 수가 없습니다

외곽 쪽으로 우회하기 위해 4거리로 가니 횡단보도 건너편에 속초황태냉면이라고 쓰인 집이 눈에 띕니다

땀도 나고 열이 나 아이스크림이라도 하나 먹으려 했는데 마침 잘 됐습니다

배가 고프지 않아도 저거 하나 먹어봐야겠다고 작정합니다

속초 가서도 황태냉면을 먹어보지 못했던 기억이 되살아나서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지요.



 

벽에는 내가 좋아하는 구멍 뚫린 불판에 불고기를 한다는 사진도 붙어있습니다

함흥냉면 사리에 무채, 오이, 초고추장으로 무친 황태와 삶은 계란이 올랐습니다

찬 육수를 추가로 시켜 더 붓고 국물을 한술 떠봅니다

식초는 더 넣지는 않아도 되겠지만 제 입맛엔 좀 답니다. 그거야 요즘 추세니 어쩔 수 없지요

북어는 양념을 짙게 빨아들이니 북어 본연의 맛은 잘 나질 않지만 

강추위와 세찬 바람으로 수많은 날을 겪은 육질은 날 보라는 듯 묵직한 느낌을 주고 시원한 육수가 갈증을 풀어줍니다

냉면 맛에 짖 누르던 무거움을 잠시 잊어버리니, 사람이란... 

본향에서 먹어보지는 못했지만 거의 맛은 따라갈 것 같습니다. 우연찮게 괜찮은 집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초입부터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이 나를 반겨줍니다

이제부터 들어가는 뚝방길은 도로 곁으로 산책로와 맨 땅의 좁은 숲길이 나란히 나있습니다

양쪽으로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살벌한 도로를 곁에 끼고 있으면서도 

한 겹의 나무로 싸인 연약한 소로는 지친 자를 보듬어 주는 따사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 소로입니다.

 










이윽고 길은 중랑천을 버리고 우이천을 따라갑니다. 바로 우리 집 쪽으로 가는 길이지요

우이천은 그 좁은 수면에 커다란 북한산을 안고 다독여 주고 있습니다

집이란 막연한 안도감이 이토록 큰 것일까요?


닥다리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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