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

똑딱이를 위한 변명

fotomani 2020. 9. 2. 14:33

제가 SLR(Single Lens Reflex) 카메라와 렌즈들을 포기하고 똑딱이를 수족처럼 달고 다니기 시작한 게

벌써 까마득합니다. 쓰지도 않을 렌즈 백팩에 잔뜩 넣고 다니는 게 쉽지 않아서지요.

 

"형, 아무리 필름값 안 들어도 너무한 거 아니야?"

양 눈을 뜨고 셔터를 눌러대는 나를 보고 후배가 하는 말입니다.

필름 100ft짜리 한 롤 사서 잘라 쓰던 때의 꿈이 이루어진 것이지요.

 

루믹스 LF1을 쓰게 된 게 언제 적인지 기억이 잘나지 않지만 한 5년 되었을까요?

후속기가 나오지 않아 비슷한 스펙의 소니 HX90V가 매물로 나온 게 있어 그걸 구입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라이카, 자이스, 둘 다 독일제 유명 렌즈로군요. ㅎ

 

귀한 필름을 36 프레임 씩 잘라 쓰던 때는 미리 콘티(continuity)랍시고 짜보기도 했지만

메모리 카드가 필름을 대체하고 나선 그것조차 하게 되질 않으니 하드에 저장된 파일은 쓰레기가 대부분일 겁니다.

모던타임스 부산물이지요.

 

새 걸 사지 않고 중고 구입하는 건 카메라를 험하게 쓰기도 하고 요즘 전자기기 라이프사이클이 짧기 때문입니다.

고기능 카메라를 사도 버릴 때까지 그 기능 다 써보지도 못하고 폐기하는 게 대부분입니다.

 

꼭 필요한 사진만 골라서 하드에 저장해야 하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저렇게 많이 찍은 사진을 쑤셔 넣고야 맙니다.

전에는 하드에 정리할 때 폴더 별로 태그를 달아 정리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귀찮아집니다.

내가 죽고 나면 나의 보물들은 바로 쓰레기 통으로 직행할 께 뻔하니 말입니다.

 

나는 빽통(캐논 망원렌즈)이나 삼각대 들고 카메라 백팩 메고 다니는 거 힘에 부치기도 하지만

생리적으로 싫어합니다. 

 

"더 살펴보지 않아도 돼요?" 

재택근무 중이라 해서 카메라 주인이 젊은 총각이겠거니 했는데 의외로 젊은 여자분이었습니다.

더 이상 들여다볼 필요도 없겠군요.  장롱 표일 가능성이 많으니까요.

 

사진은 정지된 상태에서 구도 잡고 조용히 셔터를 누르는 게 보통이지요.

내가 걸으면서 사진 찍는 걸 보고 어떻게 그렇게 한 손에 들고 사진을 찍느냐 합니다.

물론 그렇게 찍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35미리나 똑딱이의 본질은 스냅 샷이라고 믿습니다.

 

루믹스 때도 손에 딱 붙는 게 마음에 들었는데 조그만 것이 묵직하게 손바닥에 안착하는 느낌이 좋습니다.

 

차를 운전하고 다니다 보면 '아, 저기서 한 장 찍을 걸'하면서 후회하는 때가 많습니다.

돌아올 때 찍는다지만 다른 길로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 길로 되돌아온다 쳐도

촬영 환경과 보는 각도가 이미 변했으니 그때 감흥이 살아날 리 없습니다.

그래서 사진은 느꼈을 때 안정적으로 찍을 조건이 안돼도 즉촬해야 합니다.

임응식 거장은 평생 단렌즈 라이카 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다 합니다.

사람 눈과 같은 시야각을 가진 표준렌즈가 가장 자연스러운 사진이라는 것이지요.

그것까진 안되더라도 똑딱이는 항상 찍을 준비가 돼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몇 년 사이에 저렇게 후딱 만 장이 넘어가고 셔터 뭉치가 날아가거나 주밍 할 때 

꾸룩 거리 거나 센서에 먼지도 붙게 마련입니다. A/S 보낸다지만 그거 쉬운 일 아닙니다.

카메라는 늙어가고 후속기도 나오지 않고 중고 구하기도 힘드니 어느 순간에 꼴까닥 할지 알 수 없습니다.

비슷한 거라도 있으면 하나 구해야겠다 하던 차에 눈에 띈 겁니다.

모니터도 틸팅이 되니 로우 앵글에서 배 깔고 허걱 거리는 일은 없어지겠습니다.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카메라를 거리낌도 없이 단숨에 차 버리냐고요?

아닙니다. 보물상자에 상처뿐인 노병, 나를 대변해주던 동지들이 서로 다독이며 여생을 보내고 있습니다.

 

닥다리로 가는 길

http://blog.daum.net/foto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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